[행복한책읽기Review] 만화보다 파란만장한 만화가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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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구름 속의 아이 고우영 지음, 자음과모음, 200쪽, 9700원

만주가 고향인 아이가 있었다. 2년 전 타계한 만화가 고우영씨다. 아이는 다카노조 우이세이(高園羽榮)로 불렸다. 평양에서 경찰로 있다가 만주로 건너와 양복점을 했던 아버지가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어린 시절은 행복으로 넘쳤다. 요즘 말로 자연친화형, 웰빙형 생활이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황톳길과 말똥구리와 함께 놀던 시절"이었다. 넉넉한 집안에 싱그러운 자연,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었다.

소년의 '낙원시절'은 여덟 살 때 끝난다. 제국주의 일본의 패배로 소년은 '낯선'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척박한 현실과의 첫 만남이었다. '친일파' 아버지 덕에 남부러울 게 없었던 소년은 되레 고향 사람 만주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렵게 도착한 신의주도 고달프긴 마찬가지. '쪽발이' 가족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소년의 가족은 다시 짐을 꾸렸다. 러시아 군대가 주둔한 북한을 떠나, 38선을 넘어, 어렵사리 미군이 들어온 서울에 도착했다. 그간 한국어를 전혀 몰랐던 소년은 한두 마디 우리말도 배우게 된다. 일본군→러시아군→미군으로 이어지는 20세기 한국사의 한 단면도 체험한다.

고인은 그림만 잘 그린 게 아니라 글솜씨도 대단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낚아챈다. 상처와 비극의 우리 현대사를 유머와 여유의 공간으로 돌려놓곤 한다. 그는 "조국의 언어조차 몰랐던 자격 없는 국민이 참회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지만 그토록 힘겨운 시대에 태어난 천진한 아이에게 누가 과연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1978년 나온 책을 복간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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