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하려면 창문이라도…/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정말 30도가 넘어도 안 트는 겁니까.』
『에어컨 가동하는데 얼마나 든다고….』
요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공무원들이 사석에서 주고 받는 으뜸 화제는 공공건물 에어컨가동 금지조치다.
30일 오전에는 냉방금지를 지시했던 정원식총리가 청사10층과 일부 사무실을 찾아 환풍구조와 선풍기보유상태를 확인하곤 『어떻게 하든 올여름은 선풍기로 견뎌보자』고 독려하고 『밀폐된 북향창문에 부분적인 개폐식 창문을 설치하는 방안을 총무처와 협의,검토하라』는 즉석 지시를 했다. 그러나 가로·세로 1m 정도의 창문설치 비용이 1백만원으로 총경비가 에어컨냉방보다 훨씬 많은 수억원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총무처 관계자들로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냉방이 안되자 선풍기를 청사로 들여오려는 공무원들과 이를 막는 수위들과의 승강이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선풍기 5천여대의 소비전력과 종합청사 1동에어컨가동 전력이 맞먹어 총무처가 선풍기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총무처의 계산으로는 7∼9월초까지 60여일동안 6백20㎾(종합청사),8백㎾(과천2청사) 용량의 냉방기 2대씩을 가동치 않을 경우 절약되는 금액은 1억3천만원.
세종로와 과천종합청사 공무원 1만5백여명이 냉방금지로 인한 능률저하와 민원행정 서비스미흡 등을 경제수치로 따진다면 과연 수지맞는 장사일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전력예비율이 2.5%에 불과해 제한 송전사태를 막으려면 공무원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논리.
60,70,80,90년대를 관통하는 「공무원 모범의 논리」를 「자기 합리화」로 받아들여야할지,아니면 「공직자의 소명의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구분할 수 없게 됐다는 한 공무원의 독백이 한낱 푸념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