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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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죄가 없다. 출세가 약속돼 있었고,아름다운 약혼자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게 죄라면 죄였다. 직장의 동료와 연적으로부터 시기를 받은 탓이다. 당테스를 시기한 두 사람은 그를 나폴레옹의 스파이라고 밀고했고,담당검사는 그가 무죄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종신징역을 「선고」해 그를 지중해 한복판의 샤토 디프 요새 감옥에 수감했다.
이 작품이 씌어진 1백50여년전의 프랑스에서는 검사가 「선고」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테스는 죄가 없을뿐만 아니라 정식 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미결수였던 것이다.
실상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범죄의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갇히는 예는 현실속에서 얼마든지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혼란한 나라일수록 이른바 양심수들이 많게 마련이고,이들에 대한 재판은 지연될대로 지연돼 감옥마다 미결수가 넘쳐 흐르기 십상이다.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판사가 가릴 일이지만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에 죄수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법의 정신이다. 유·무죄를 기다리는 피의자 혹은 피고인을 보통 미결수라고 부르는데 실상 그 용어 자체도 잘못이다. 정확한 용어로는 「미결수용자」라고 해야한다. 그들에게 신체의 자유가 보장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미결수들은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기결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결수들은 교정·교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작년 이맘때 어떤 교도소가 소년 미결수를 대상으로 서당을 개설하고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가르친다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재소자들에게 공부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교정·교화의 한 방법이라면 한문을 가르친다해서 별스러울 것도 없는데 다만 그 대상이 미결수였기 때문에 특이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미결수들은 검찰이나 교소도의 행정편의에 따라 수용장소가 멋대로 옮겨지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왔다. 그것이 부당하다는 서울고법의 결정은 당연하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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