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런 회견이 왜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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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왜 특별 기자회견을 했는가. 국민은 대통령이 특별회견을 한다니까 뭔가 난국을 빨리 매듭짓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할 줄 기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제껏 해온 말만 똑같이 되풀이해 왜 이런 회견이 필요했는지 국민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盧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이 야당의 10분의 1만 넘는다면 대통령직을 그만두겠으며, 수사가 끝나면 재신임을 묻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전제조건을 단 대통령직 사퇴 발언이 국민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자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여론을 대통령은 귓전으로 들었다는 말밖에 안 된다. 게다가 지난번 4당대표와의 회동에서 재신임 관련의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고 말해 놓고 다시 방법론을 모색하겠다니 정국의 불확실성만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은 더군다나 10분의 1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퇴하겠다고 확언한 후 다시 "정계은퇴는 강조어법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하니 도대체 진심이 무엇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盧대통령은 또 자신에게도 "불법자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스스로 말했듯이 불법성에선 여야가 '오십보 백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작 중요한 위법성보다 야당과의 액수 차이만 강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그러니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략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이 지나치게 한 정파의 수장 입장에 연연해야 하는가. 또 그는 조건부 사퇴론의 배경을 '야당의 부풀리기식 의혹 제기와 관련, 조기에 강한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10분의 1 이상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 마당에 어찌 검찰이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가.

다만 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정치개혁의 속도를 내고, 스스로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나선 것은 평가됨 직하다. 문제는 실천이다. 盧대통령은 수사의 조기종결과 정치개혁의 가속화를 위해 정치권에 수사협조를 당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