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 테니스 강대국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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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세계남자테니스계에 스페인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에밀리오 산체스(26·세계10위)·세르지 브루게라(21·14위) 등 클레이코트의 마술사들을 앞세운 스페인이 올 시즌 초반 8명의 선수를 세계랭킹 1백위권 내에 진입시키며 세계남자테니스 최강국으로의 발돋움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신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들 8명의 세계 톱1백위권 진입은 미국(18명), 아르헨티나(9명)에 이어 독일·프랑스 등과 함께 공동 3위에 랭크되는 성적.
비록 스페인 톱랭커 산체스의 세계랭킹이 10위로 정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신세대는 지난해 국제대회 단식결승에 17차례 올라 8개의 타이틀과 9개의 준우승을 챙기는 근래 보기 드문 호성적을 올렸다.
복식에서는 10개의 타이틀쟁취와 여섯 차례의 준우승을 차지, 안드레스 기메노·마누엘 산타나·마누엘 오란테스 등 「3인방」이 지난 60년대와 70년대 초에 걸쳐 일궈냈던 옛 영화의 재현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특히 24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벌어진 총상금 1백40만달러(약 11억원)의 푸조월드팀컵대회 결승에선 산체스·브루게라가 체코의 페트르 코르다·카렐 노바체크를 각각 격파하는 활약에 힘입어 스페인이 세계정상에 서는 감격을 맛보게 했다.
스페인 테니스의 특징은 하드코트에서의 강서브에 이은 적극적인 네트대시로 설명되는 현대 테니스와는 정반대로 참을성을 바탕으로 정교한 스트로크가 빛을 발하는 클레이코트 전문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클레이코트에서 벌어진 25개 대회에서 스페인은 7개 대회의 단식패권과 5개의 복식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우승 일보직전까지 갔던 준우승만도 단식에서 11번, 복식에서 15번으로 클레이코트에서의 절대 강세현상을 기록으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브루게라는 지난해 12개 클레이코트대회에 출전, 8할대의 높은 승률을 과시하며 1천2백70점의 랭킹포인트를 획득해 클레이코트에서의 포인트획득 세계1위(2위는 스웨덴의 구스탑슨이 기록한 1천2백15점)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클레이코트에서의 강세는 변변한 하드코트 하나 없는 스페인의 열악한 테니스시설 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젊은 선수들의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
세계 71위에 랭크된 토마스카르보네일(23)은 『미국 등 테니스열강의 선수들이 어릴 적부터 하드코트에서 단련된 반면 스페인선수들은 20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하드코트를 구경하게되니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며 강한 불평을 터뜨린다.
스페인 남자테니스는 최근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잔뜩 조바심을 내고있다.
지난 72년 안드레스 기메노가 프랑스오픈을 제패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5일부터 2주간 롤랑 가로의 붉은 클레이코트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오픈은 스페인 신세대의 선두주자인 산체스·브루게라가 과연 20년만에 스페인에 우승을 안겨줄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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