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 입시문제 중학교 과정에서 출제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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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5면

노명완 고려대교수ㆍ국어 

중학교에 다닐 때 내내 학년 수석을 하던 조카가 어느 특목고에 지원하였다가 고배를 마셨다. 고등학교 과정의 문제가 나와 시험을 망쳤다는 것이다. 조카는 며칠 후 다른 특목고에 지원했고, 그 학교에는 중학교 내신 성적만으로 시험을 보지 않고 입학했다. 조카는 지금 그 학교에서 학년 수석을 하고 있다.

특목고의 갈 길

조카가 처음 지원한 학교에 떨어진 이유는 선행학습 때문이다. 이는 특목고의 대표적 문제점이다. 중학생이 고교 과정을 미리 배우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고, 학교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으니 학부모들이 학원에 의존하는 것이다.

외국어고가 이러저러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서 외고를 아예 없애자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외국어고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에 대한 국민 요구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 존재는 흔들지 말아야 한다.

고양시 일산구 후곡마을 주변에 형성된 특목고 전문 학원단지. 오후 11시 수업을 마치고 나온 중학생들을 태운 대형버스가 2개 차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신인섭 기자] 

다만 그 운영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선 시험문제를 중학교 과정에서 내야 한다. 지금처럼 고교 과정에서 시험문제를 내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이런 역할을 하지 않으니까 중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에 열중하지 않고 학원으로 가는 것이다. 학교에는 엄연히 정해진 교육 과정이 있고 여기에서 시험문제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인 교육시스템이 흔들린다. 중학교 과정에서 시험문제를 내되 대신 어렵게 내면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있다. 시험문제가 중학교 과정을 벗어나지 않으면 중학교 교사들도 충분히 학생들의 심화학습을 지도할 수 있다.

외국어고가 수업을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원래 목적에 맞게 외국어 교육을 충실히 하면 된다. 입시반을 별도로 편성하거나 일본어·스페인어 시간에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의대나 경영대로 가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의대나 경영대에도 외국어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서 언어 분야를 전공할 경우 상당한 정도의 가산점을 주는 게 당연하다.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는 병행할 수 있다. 수월성 교육이 평준화를 다소 해친다고 해서 수월성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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