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고 남성적인 느낌의 와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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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9면

병을 딴 후 바로 잔에 따르고 색상을 보니 밝은 루비 컬러가 선명하다. 향을 맡으니 부르고뉴 와인의 특징인 각종 베리류 향이 살짝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 닫혀 있는 느낌이 강하고 알코올 향도 코끝을 자극한다. 맛을 보니 강한 구조감이 먼저 다가와서 샹볼 지역의 섬세한 특징이 가려지는 듯하다.

와인 시음기-조르주 루미에의 샹볼 뮤지니 레 크라 99년

2시간이 지나서 다시 맡아보니 신선한 베리류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알코올 향은 많이 잦아들었으나 풍미를 거스르는 느낌. 잘 익은 과일과 캐러멜의 풍미가 느껴지지만 아직 단단하다. 3시간 30분이 경과하니 과일 향이 멋지게 올라오면서 본연의 모습을 싸고 있던 두터운 보호막이 걷히는 느낌이 든다.

폭발적인 향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지속적으로 풍겨오는 향이 여성적인 느낌을 주면서 비로소 이 와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나타나는 듯하다. 맛을 보니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풍미가 특징인데, 잘 익은 딸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거칠고 뻑뻑한 타닌 대신 입 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운 타닌이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약간은 크리미한 질감과 더불어 당도도 느껴지는데 튀지 않는 절제된 균형감이 아름답다. 입 안에서의 피니시도 오래 지속되어 은은함이 전해진다.
이제 6시간이 지났다. 확연히 잦아든 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발산하고 갔다는 느낌이 온다. 맛을 보니 이전에 비해 확실히 밸런스도 무너진 감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마셨던 다른 도멘의 샹볼 뮤지니 와인들에 비해 조금 더 남성적이고 견고한 느낌의 와인이라는 생각이다. 포도가 자란 밭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루미에(Roumier)의 양조 스타일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은 비정형적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내면서도 좋은 평가와 더불어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도전정신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위대한 양조자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남일우(치과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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