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코너] 강간범의 병든 사디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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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경제가 하강국면에 빠져들면 거리에 노숙자가 증가하고 심야 주택가에 강·절도범이 들끓는다. 몇 년 전 어떤 환자가 밤중에 눈을 떴을 때 위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복면의 괴한과 눈이 딱 마주치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당연하고 자리에서 강제로 끌려 일어난 그는 도둑들의 요구로 현금과 수표가 가득 든 지갑을 내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고 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혹시 그 댁 부녀자들이 성폭행은 안 당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요즘 강도들은 고가의 물건이나 금품만 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라고 할 만큼 부녀자를 강간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그것이라고 그들 사회에서는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수년 전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범 Y씨가 여성 혼자 기거하는 오피스텔만 골라 잠입,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꼭 빠뜨리지 않고 강간했던 것은 만일 살인에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성범죄자들의 병적 공격성을 보면 누구나 극도의 공포를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는 이상해서 여염집 여자들 가운데는 자주 강도에게 강간당하는 꿈을 꾸며 그런 때면 어김없이 극한적인 오르가슴이 엄습한다는 별난 사람이 있다.

여성이 가진 일반적인 섹스 경향, 즉 마조히즘(masochism·피학적 섹스 태도)의 극단적 모습이라고 해석되는데 일반인이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점잖은 여자 중에 흑인 남성에게 강제로 폭행당하는 장면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무슨 이유로 난폭자들은 무고한 피해자를 상대로 강간이란 용서받지 못할 성범죄를 저지르는가? 개중에는 여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범인의 성 중추를 강하게 자극, 섹스를 못 참도록 만들어 놓은 결과라는 견해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강간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식의 강간사건은 평소에 안면이 있는 남성에 의해 자주 다니던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혹자는 장기간의 금욕이 남자로 하여금 강간사건을 유발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남자들은 창녀를 찾아가 위로를 받거나 자위행위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 무엇이 남성들을 강간범으로 만드는가. 학자들은 강간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본능적 욕구의 한 형태로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든 정복하려는 원시적 공격욕이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른바 투지라고 해서 생활전선이나 스포츠, 그리고 생산적인 노동 등에서 이런 욕구가 분출된다. 그런데 이 공격욕이란 원시적 힘이 남녀 간의 사랑, 더 나아가 하나의 에너지원이 되는 고마운 일면도 지니고 있다. 전쟁의 경우에는 대중의 공격욕구가 하나로 뭉쳐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 공격욕구가 불필요한 시대가 오면 그것이 지적 능력과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에서 적개심의 소실과 더불어 해치울 목표를 잃어버린 결과 성범죄나 폭력행위 등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는 수가 있다. 종전 후 전쟁 당사국에 집단강도나 강간사범이 급증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왜곡된 공격욕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강간사건의 대부분이 성기 결합과 피스톤 운동이 결여되어 있고 질 밖에 사정하는 예가 대부분이라는 경찰당국의 조사 결과다. 두려운 마음 때문이라고 경찰은 믿고 있다. 그리고 올바른 연애나 결혼생활의 경험도 없는 상태로 여성의 애정에 굶주려 절망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일그러지고 반사적으로 여성을 공격한다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그리고 열등감을 커버하기 위해 약한 여성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성적 흥분을 느낀다. 병든 가학적 태도, 즉 사디즘(sadism:가학적 섹스 태도)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유의할 것은 그런 나약한 일면이 감지되더라도 섣불리 반항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러면 매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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