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소송 해결엔 '득' … 그룹 지배구조엔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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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상장을 서두를 수도, 늦출 수도 없다. 그러나 올해 안 상장은 불가능하다."

27일 생보사 상장 승인이 발표된 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생명 상장에 대해 '딜레마'라며 이렇게 말했다. 삼성생명이 상장할 경우 옛 삼성자동차 부채를 놓고 진행 중인 소송은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룹 지배구조에 문제가 생기게 돼 고민이 깊다.

서울보증보험 등 삼성차 채권단은 2005년 12월 삼성 그룹을 상대로 약 5조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삼성차의 대출금 2조4500억원과 연체이자 2조3000억원을 합한 금액이다. 1999년 6월 이건희 회장은 삼성차 부실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채권단에 증여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금화되지 않으면서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생명을 상장하면 주식의 현금화가 가능해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상장을 하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금융회사 주식 가치가 전체의 50%가 넘으면 금융지주회사가 된다고 규정한다. 에버랜드는 현재 삼성생명 주식 386만 주(19.3%)를 보유했다. 삼성생명이 상장할 경우 주식 가치가 75만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렇게 되면 금융 자산이 50%를 넘게 돼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유력해진다. 법에 따라 에버랜드는 금융업을 뺀 레저 사업 등 주력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 또 삼성생명은 비금융사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돼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7.2%를 2년 안에 모두 처분해야 한다.

당장 지배구조가 취약해지고, 이 경우 외국 투기 자본이 삼성전자를 적대적 인수합병(M&A)할 수도 있다는 게 삼성의 우려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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