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몇십분만에 결심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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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기부원 흑색선전물 살포사건 재판이 30분만에 구형까지 마친 졸속재판이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도 한맥회사건 재판 역시 1시간도 채 못돼 구형까지 끝내버렸다.
역시 이번에도 졸속재판의 주역은 검찰이다. 돈을 받고 불법선거운동을 했음이 명백히 드러났고 피고인들도 그것을 순순히 시인하고 있는데도 검찰은 누가 동원을 지시했는지,어떻게 동원됐는지,돈은 얼마나 받았는지 등 가장 기초적인 사항조차 일체 묻지않았다. 이렇게 되면 검찰이 과연 피고인의 혐의사실을 추궁해 파헤치고 입증할 법적책임을 진 검찰인지,피고인을 감싸주는 변호인인지의 분간부터가 어렵다.
왜 검찰이 이 시대에 있어서도 이래야만 하는가. 우리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초연한 상태에서 오로지 법적 정의에만 입각해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까지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우리사회의 민주화 수준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그러나 판단에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는 사건도 아니고 불법행위를 피고인들 스스로까지 아무런 이의없이 인정하고 있는 사건에서조차 최소한의 법적형식이나 절차도 갖추지 않는대서야 어떻게 검찰이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흑색선전물 사건 재판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자체의 결과여부보다도 또 한번 스스로 먹칠을 한 검찰의 신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한가닥 위안거리가 있다면 재판부만은 안기부 흑색선전물사건 재판 때와는 태도가 달랐다는 점이다. 검찰이 필요한 신문을 전혀 하지 않자 담당재판부가 보충신문을 통해 동원과정,일당액수,한맥회의 운영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한맥회의 실체나 일당액수 등은 형량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도 검찰과 변호인이 모두 이에 대한 신문을 하지 않아 보충신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검찰로서는 얼굴이 붉어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총선기간중 법무부장관과 검찰 수뇌부도 탈법 청중동원에 대해서는 엄중한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경고를 여러차례 한바 있다.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선거후에도 철저히 추궁하여 선거풍토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러한 경고와 다짐을 두 재판에서의 검찰 자세와는 과연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는가.
앞으로 불법선거운동 관련 재판은 또 있을 것이다. 야당측이 피고인이 된 재판에서도 과연 이번과 같은 자세가 견지될 수 있는 것인가.
최근 두 재판에서 보여준 검찰의 자세는 법적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검사들과 민주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에게 다같이 실망과 걱정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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