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소련·체코.북한 의사들 미군·국군 포로에 생체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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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전 당시 소련.체코.북한 의사들이 미군.국군 포로에 대한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는 정보가 미국 당국에 입수돼 조사가 이뤄졌던 것으로 25일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공개된 미 국방부 극비문서들에 의해 확인됐다.

이들 문서에 따르면 미 군사정보국(DIA)은 생체 실험과 관련된 정보를 1991년 전직 체코군 고위 간부로부터 입수했다는 것이다.

이 체코군 간부는 "소련.체코.북한 의사들이 정신력을 혼미하게 만들기 위한 특수 약물 개발을 위해 유엔 및 국군 포로에게 약물 투여 실험을 실시했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이 생체 실험은 소련 및 체코 의사들에 대한 훈련의 일환으로도 자행됐으며 실험 대상들은 비밀 유지를 위해 곧바로 처형됐다고 한다. DIA는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뒤 곧바로 미 중앙정보국(CIA) 등 다른 정보기관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체코 및 소련 후신인 독립국가연합(CIS) 등에 외교적 항의서를 전달토록 권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미 상원 전쟁포로 및 실종자 특별위원회에도 관련 정보를 보고하도록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정보 제공자에 대해 "20년 넘게 미 정부에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 왔으며 이번 사안과 관련,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한 결과 사실대로 진술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보고서에는 1992년 11월 미 상원 전쟁포로 및 실종자 특별위원회에서 체코군 고위 간부가 밝혔다는 생체 실험의 동기 및 시기, 운영 구조, 실험 결과, 규모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들 보고서는 정보 제공자 보호를 위해 관련 부분들이 모두 지워진 채 비밀해제됐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으로 미루어 68년 미국에 망명한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국방부 제1서기였던 얀 세이나가 주 정보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이나는 96년 미 하원 국가안보위에 출석해 "한국전 발발 직후 소련으로부터 북한에 군 병원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치료가 명목상 이유였으나 실제 목적은 한국군 및 미군에 대한 생체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포로들은 군의관들의 부상자 치료 및 절단수술 실험용으로 이용됐으며 생화학 무기 및 방사능을 실험하기 위한 장소로도 쓰였다. 그는 97년 뉴욕에서 70세로 사망했다.

한편 북한의 국군 포로 생체 실험설은 92년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처음으로 제기했었다.

또 99년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자 이영국씨는 2002년 일본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북한의 생체실험실은 남포에 있으며 6.25 전쟁 중 국군 포로를 실험 대상으로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 국군 포로=53년 7월 정전협정 당시 남한으로 송환되지 못하고 북한에 잔류하거나 소련으로 끌려간 국군 포로. 한국 국방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 포로는 546명, 사망자 845명, 행방불명자 260명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단 한 명의 국군 포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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