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 500억 '대박'도 부족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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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종자돈 1000만원으로 7년 만에 500억원을 벌어들인 개미투자자가 시세 조종 혐의로 금융 감독 당국에 적발됐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5일 코스피 200 선물을 시세 조종한 혐의로 개인투자자 A씨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기관이 아닌 개인 투자자가 선물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해 부당 이득을 챙겨 적발된 것은 A씨가 처음이다. 선물은 주식과 달리 큰돈이 필요해 개인이 시세 조종에 나서기 힘들 것이란 통념이 깨진 셈이다.

◆ 회사원에서 큰손으로=평범한 회사원이었던 A씨는 2000년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그가 손에 쥔 돈은 1000만원이 전부. 그는 투자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불과 5년 만에 1000만원을 300억원으로 무려 3000배나 불렸다. A씨가 어떤 주식에 투자해 얼마만큼의 수익률을 올렸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A씨는 코스닥의 주가 급등 주식을 제대로 골라내 대박을 터뜨리며 종자돈을 불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시세 조종 등 부당행위로 금융당국에 고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후 선물 시장에 뛰어든 A씨는 다시 1년 만에 130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현재 증시에 상장된 회사 1~2곳의 지분을 각각 5% 넘게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내로라하는 큰손으로 떠오른 A씨는 그러나 선물투자 과정에서 선물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하다가 감독당국에 적발됐다.

◆ 선물까지 조작=증선위에 따르면 A씨는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코스피 200 선물을 매도한 뒤 저가로 매도 주문을 내거나 가장 매매를 해 선물 가격을 하락시킨 뒤 다시 사들여 부당이득을 챙겼다. 증선위는 A씨가 그간 올린 수익 가운데 최소 10억원은 시세 조종으로 얻은 부당이득으로 보고 있다.

선물은 주식과 달리 한 번 손실이 나면 투자금의 몇 천 배를 순식간에 까먹을 수도 있어 개인투자자는 시세 조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 선물까지 A씨는 시세 조종에 나선 것이다. A씨의 부당 거래를 조사한 금융감독원 측은 "대박 성공신화를 거둔 A씨가 지나친 자신감으로 선물시장까지 조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주식 투자 과정에서도 불법이나 부당 거래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홍성화 금융감독원 부국장은 "거래가 뜸한 시간대를 이용해 짧은 시간 내 거래를 집중시키면서 시세를 조종했다"며 "선물시장에선 주식시장보다 리스크 관리가 훨씬 어려운 만큼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면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지금까지 불공정 거래가 어려운 것으로 파악해 온 선물거래에서 시세 조종 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선물을 포함한 파생상품 불공정 거래 조사 전담팀을 설치,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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