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국서 연출의 베케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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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유럽에서 1년여 본격 연극들을 섭렵하다 돌아온 기국서씨가 연출하는 베케트의 작품은 그의 재미있는 연극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보다 진지한 연극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있다.
극단「76단」이 베케트의『행복한 나날들(Happy Days)』(6월4일까지 엘칸토 예술극장),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2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를 새삼 무대에 올리는 것은 감각적 놀이만을 찾는 최근 연극의 흐름에 대한 자기비판이자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다.
국내 초연인『행복한 나날들』은 기국서씨의 정공법 연출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중년 여인이 삶의 무의미함과 절망적인 현실을 줄곧 뇌까리는『행복한 나날들』은 관객인 현대인들에게「행복한 나날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달해준다.
『행복한 나날들』은 극의 이야기보다 진흙 속에 파묻혀 가며 지겨운 말들을 늘어놓는 주인공을 보고 느끼는 관객의 일차적인 인식이 주된 내용이나 엘칸토극장 무대는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고도를…』는 기씨에 의해 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바꿔 각색된 점이 또한 흥미를 끈다. 따라서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도시 여성들의 처참한 고독의 세계를 묘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 식의 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베케트를 연출하면서 기씨는『베케트가 우리 연극이 통과해야 할 길 』이라며『실험적이고 생각하는 연극이 제대로 자리잡은 후에야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창조적인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이번 작품들의 의의를 설명했다.<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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