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꾼 아직 설치다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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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서소문에 있는 한 회사에 다니는 정모씨(38)는 7일 오전 9시40분쯤 거래처 업무를 마치고 지하철 2호선 지하통로 KAL빌딩 앞 출구부근을 지나다 통로 구석자리에서 벌어진 야바위판을 보고 야릇한 흥미를 느꼈다.
『요즘도 야바위판이 벌어지나. 더구나 도심 한복판에서….』
정씨는 일종의 향수에 신종수법에 대한 호기심까지 겹쳐 4∼5명이 몰려있는 야바위판에 다가가 고개를 내밀고 구경을 했다.
빨간무늬 카드 1장과 흰무늬 카드 2장을 섞어놓은 뒤 빨간무늬를 골라잡으면 댄 돈의 두배를 주는 내용의 야바위를 한창 진행하던 「꾼」과 둘러섰던 사람들(정씨는 이들도 모두 한패라고 짐작했다)이 정씨가 구경만 하고있자 한번 돈을 걸어보도록 권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내가 1백% 확실하게 봤어요. 여기에 걸어요. 나는 다 잃었으니 당신이라도 돈을 따세요』라며 부추겼다.
『역시 고전적인 수법이 나오는구나』고 생각한 정씨가 돌아서 가려는 순간 그 사람은 잽싸게 정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내 말릴 틈도 없이 전액(15만원)을 걸었고,결과는 역시 「꽝」이었다.
『이건 강도 아니야. 내 돈 내놔.』 거칠게 항의하는 정씨를 모여있던 사람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에워쌌다.
『당신이 돈을 분명 걸었고 나는 도와줬을 뿐이잖아. 나도 수십만원 날리고 열받는데 왜 이래. 죽고싶어.』
『점잖게 넥타이까지 맨 자식이 엉뚱한 수작이야.』
세 불리를 느낀 정씨는 식식거리며 돌아서서 인근 파출소를 찾아갔다. 야바위를 한게 아니라 강탈을 당했다는 정씨의 호소를 들은 직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우리 얼굴이 다 알려져 있어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도 다 도망갈거요.』
『당신을 미행해 이리 들어오는 것을 봤을텐데…. 워낙 동에 번쩍,서에 번쩍 하는 놈들이라….』
몇분 지나 현장에 출동한 경관들은 『역시 예상대로였다』며 그냥 돌아왔다.
바보같이 당하고 우리만 귀찮게 구느냐는듯한 경관들의 표정을 뒤로 하고 파출소 문을 나서던 정씨는 야바위란 어리숙한 시골사람이나 걸려드는 것이며 경찰서에 찾아가면 억울한 범죄피해는 어지간히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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