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 장수들의 관계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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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들 네 명의 한.중.일 장수들 가운데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먼저 맞붙었던 장수는 이여송과 고니시 유키나가다.

고니시는 일본 육군의 선봉장으로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진격해 평양성까지 함락시킨다. 하지만 1593년 1월 투입된 명나라 제2차 원군에 패퇴한다. 이때 평양성을 탈환하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명나라 장수가 이여송이다.

이여송은 전투에 패해 남하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파주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다. 이후 평양성에 머물다 그해 말 귀국했다. 이여송의 조부는 조선인으로 알려져 있다.

7년간의 전쟁 초기부터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신이었지만 고니시와 직접 대립한 것은 1597년 이후 이른바 정유재란이라고도 불리는 때다. 일본이 조선 수군의 맹장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 계략을 꾸며 파견한 이중간첩이 고니시의 부하였다. 일본군의 정보전에 농락당한 결과 이순신이 파직되는 것도 이때다. 이어 고니시는 이순신이 빠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을 격파하며 순천에 왜성을 쌓고 전라도 일대에 주둔한다.

하지만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지략이 다시 발휘되면서 고니시 부대는 압박을 받았고 마침내 고립된다. 포위된 고니시를 구출하기 위해 사천에 있던 일본 수군의 주력 부대가 투입돼 이순신과 맞붙은 전투가 노량해전(1598년 11월)이다. 고니시는 자신의 부대가 거의 궤멸된 채 일본으로 철수했고, 이순신은 여기서 전사한다.

우키다 히데이에는 일본군 사령관이었으므로 이순신과도 물론 관련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대부분 한성(서울)에 주둔하면서 전투의 선봉에 나서지는 않았다.

배영대 기자

※도움말 주신 분=노영구(국방대).김탁환(한국과학기술원.소설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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