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모되는 신라 암각화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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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초여름을 향한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경남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산골의 평범한 촌부 손중관 씨(52)는 남모를 걱정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가 20여년 전부터 조상을 받들 듯 애지중지「모셔오던」 신라시대의 유물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또다시 비바람에 시달릴 날이 멀지 않은 탓이다.
71년 대학 발굴조사팀에 의해 발견돼 73년 국보147호로 지정된 이 각석은 말이 국보지 그에 대한 관심은 형편없어 지난해에도 홍수에 잠기고 흙더미에 쓸려 손씨가 각석의 제 모습을 되살리는데 여간 노심초사한 것이 아니었다.
농부였던 손씨가 이 각석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60년 말부터로, 그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판석에 알듯 모를 듯 그려진 이 암각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끼가 반쯤 뒤덮였던 이 암각화가 신라시대의 것으로 알려지자 당시 이 동네 이장을 지냈던 손씨는 행여 이 각석이 조금이라도 파손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돌며 정성을 쏟았다. 그의 정성이 알려지자 울산군청은 그에게 아예 이 일에 전념하도록 관리 일을 맡겨버렸다.
그는 지난해 수해이후에도 아무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이 각석을 깨끗한 물로 닦고 주변에 쌓인 쓰레기를 정리해 겨우 제자리를 잡게 했지만 이 각석에 이르는 주변은 아직 수해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있어 다가올 장마의 횡포를 예견하기에 충분하다. 천건리 각석은 경관이 빼어난 경남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탑 등산 계곡에 자리잡은 길이 9·5m, 높이 2· 6m의 대형 자연석에 신라 화랑들이 명산대천을 순례하면서 기상을 연마하던 모습이 그림과 글에 담긴 암각화로 잔뜩 빛이 바랜 채색과 어슴푸레한 암각이 장구한 세월을 가늠케 하고 있다.
이 암각화는 중학교학생들의 미술교과서 표지로 나올 만큼 그 비중을 인정받고 있고 75년 이후 해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보호를 목적으로 주변에 단지 큰 칠책이 쳐져 있을 뿐이다.
지난해 돌다리를 휩쓸어 갈 정도의 홍수에 암각화 전체가 흙탕물에 잠겨 물이 빠진 후에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손씨는 『매년 찾아오는 홍수에 대비,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주는 등의 대책이 정부차원에서 강구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걱정은 또 있다. 이 암각화에서 얼마 멀지 않은 울산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대에 위치한「반귀대 암각화」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 사연댐 하류의 물 속에 3분의1이 늘 잠기고, 비가 오거나 하면 아예 전체가 잠겨버리는 이 그림은 73년께 발견돼 지방기념물 57호가 됐지만 이 댐이 울산시 공업용수 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탓에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암각화는 늘 물 속에 잠겨 있어야 하는 신세.
높이 2m, 폭8m의 암벽에 고대인의 생활상과 자연환경, 그리고 동식물의 형상이 선명하게 음각 되어 있어 『선조들의 옛 문화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고 말하는 손씨는 이들 유물들의 부식과 파손 등을 막는 정부차원의 대책이 아쉽다고 거듭 강조했다.【울산=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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