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도 '묻지 마 환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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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경기도에 있는 A사는 수출입과 전혀 상관없는 내수 전용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하루에도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외환 거래를 하고 있다. 외환 전담팀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원-달러, 원-엔 등의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외환 거래를 안 하는 중소 기업까지 환투기에 나서는 등 기업 환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최근 일부 기업의 과도한 투기성 외환 매매 거래를 적발, 해당 기업 경영자와 거래 은행에 주의를 환기했다고 20일 밝혔다.

한국은행 도용호 외환조사팀 과장은 "일부 대기업은 파생금융거래까지 하는가 하면 중소기업은 전담팀을 두고 과도한 당일매매(데이 트레이딩)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환투기는 투기성 외환 거래에 대한 정부 규제가 모두 폐지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외환 거래 규제는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2001년 모두 폐지됐다. 게다가 은행들이 ▶수출입 실적이 거의 없거나 ▶자본금이 수십억원인 회사에 대해 1000만 달러까지 신용 거래를 허용한 것도 환투기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한 대기업은 환투기로 200억원의 손실을 보았고, 또 다른 기업은 지난해 파생금융거래로 장사를 해 벌어들인 순이익을 모두 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이 가장 흔하게 사용한 환투기는 원-달러나 엔-달러를 대상으로 주식투자를 하듯이 현물환.선물환.스와프(반대되는 현물환 거래와 선물환 거래를 하는 것)를 1~10일의 짧은 만기로 사고파는 '단타 거래'였다. 중소기업은 현물환과 선물환 등 매매 후 당일 장중 이에 대한 반대매매를 통해 환차익을 얻으려는 데이 트레이딩을 많이 사용했다.

도 과장은 "과도한 투기성 거래는 ▶환리스크의 확대▶외환시장 교란▶기업 고유의 경영활동 위축 등의 갖가지 문제를 부른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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