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익치.김영완씨 진술에 신빙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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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법원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박지원(사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선고 직후 법정에 나온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애써 미소지었다. 검정색 양복 차림의 그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朴씨는 "괜찮다"면서 손을 들어 측근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피고인 대기실로 사라졌다. 이날 재판에는 방청객 1백20여명이 법정을 채웠다.

법원이 朴씨의 현대비자금 뇌물 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朴씨를 만나 직접 양도성예금증서(CD) 1백50장을 건넸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과 朴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김영완(해외도피)씨의 자술서를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朴씨는 3개월 간의 법정 공방 중 일관되게 "금품을 받은 적이 없으며, 이익치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그러나 "李씨가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지시를 받고 朴씨에게 CD를 전달한 경위를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어 李씨가 CD를 착복하는 등의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이나 李씨가 김영완씨와 짜고 CD를 金씨에게 줬을 가능성은 각각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朴씨 측은 이날 선고 직전까지 朴씨의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朴씨의 변호인은 "李씨가 박지원씨에게 CD를 전달한 날로 추정되는 2000년 4월 14일 밤 朴씨가 연극을 관람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사진이 발견됐다"면서 재판부에 선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선고를 내렸다. "관련자들의 진술이 확실치 않아 변호인의 주장처럼 李씨가 朴씨를 만난 날을 4월 14일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렵고, 당시 문화관광부 기록에 따르면 朴씨는 4월 30일에 연극을 본 것으로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朴씨의 변호인은 "朴씨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 증인이 있으며, 항소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변론하겠다"고 말해 항소심에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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