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죄 슬그머니 “사문화”/법무부 형법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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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권침해 말썽우려 발표안해/수사기관 반발할까 걱정/진술강요죄도 신설 “쉬쉬”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형법개정안에서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피의사실 공표죄를 사문화시키고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진술강요죄를 신설해 놓고도 인권시비·수사기관의 반발·사기저하 등을 우려해 발표에서 제외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피의사실 공표죄=「확정판결전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정신에 따라 피의자의 명예·인권보호를 위해 검찰·경찰등 범죄수사를 맡은 사람이나 이를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얻은 피의사실을 기소전에 공표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8일 확정 발표한 형법 개정안에 따르면 피의사실 공표죄에 단서조항을 추가,「공공의 이익을 위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도록 사문화시켰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같은 법개정이 수사기관의 편의위주라는 비난과 함께 인권시비가 일것으로 예상되자 이 부분을 개정한 발표자료에서 삭제시켰다.
이에 대해 김창국 변호사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됨으로써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인권 및 프라이버시 침해·명예훼손이 우려된다고 밝히고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수사기관 마음대로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공익의 판단 주체가 수사기관이란 점에서 남용우려가 있다는 비난을 우려해 개정내용을 숨기려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의 규정으로도 큰 부작용이 없이 수사기관의 횡포를 막기 위한 선언적 의미밖에 없었는데 이를 공익을 앞세워 사문화시킨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진술 강요죄=개정안 362조(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중 가혹행위) ②항에 「진술을 강요할 목적으로 피고인·피의자·기타 사람에 대해 폭행 또는 가혹행위를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 조항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5년이하의 징역)보다 진술강요를 더 무겁게 처벌토록 규정했다는 점이 특징.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진술강요죄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차원에서 처벌토록 한 것일뿐 단순한 진술요구는 처벌대상에서 제외시켜 실무·인권보호를 절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영황 변호사는 『수사공무원의 진술강요죄 신설은 인권보호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며 긍정적인 조항인데도 널리 홍보하지 않는 것은 수시기관의 반발의식 등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수사기관의 고문척결에 대한 선언적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널리 알리는게 올바른 태도』라고 말했다.
안동일 변호사도 『입법예고는 충분한 여론수렴을 위한 절차로서 가급적 많은 사항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이를 숨기려고 한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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