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순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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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순산' - 조성국(1963~ )

우사 불빛이 환하다

보름이나 앞당겨 낳은 첫배의

송아지 눈매가 생그럽다

바싹 추켜 올라간 소꼬릴 연신 얻어맞으며

얼굴 벌겋게 달아올라서,

새 목숨

힘겨이 받아내던 친구는

모래물집에 젖은 털을 닦아주며

우유 꼭지 물리는데

그 모습 이윽히 지켜본 어미 소가

아주 곤한 잠을 청하였다


고향에 가서 보았네. 미국산 송아지 안심을 샴푸나 목욕타월 고르듯 골라 카트에 담을 때, 그 귀갓길에 돌연 주저앉아 누군가 울었네. 생그럽다는 내 고향 송아지 눈매여. 미국산 송아지 눈매도 너와 다를 바 없으련만, 사람이 소와 친구였던 시절은 이제 오지 않는 것일까. 닫힌 고향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바람이 우네. 문 밖은 절벽이니 친구여, 잠시나마 서로의 온기였던 우리의 몸이 울며 가네. 송아지가 단지 상품이 되고, '순산'의 기억은 '생산'만 남기고 거덜나겠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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