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임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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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약력>▲1971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 시 당선▲시집『바람이 남긴 은어』『그림자를 지우며』등.
슬픔이 터진다
헐벗고 추운 뜨락에서
내내 벌서던 침묵의 가지마다
하얀 옹알이가 터진다
아직도 얼음살 박힌
그 얼얼한 생인손이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르면
순백의 플래시가 터지고, 이내
컬러로 인화되는 언어들
얼굴이 유독 희고 볼우물 예쁜
소학교적 처녀 선생님같이
낭랑한 목소리로 출석을 부르면
네! 네! 손들며 화답하는 아이들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
민들레 씀바귀꽃 제비꽃…
잊었던 망자를 일일이 호명하는
저 고고하고 빛부신 초혼이 있어
뜨거운 사랑의 입김이 있어
세상은 또 이렇듯 환해지고
눈뜨고 사는 일도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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