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신라 토기 부문 배용석씨|옛 토공 솜씨 되살리기 3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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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흙을 만지면 마음이 경건하고 신선해집니다. 특히 도자기를 휩싸는 가마 불 앞에 서면 무아지경에 빠지곤 합니다』
신라 토공의 숨결을 되살리는데 일생을 바쳐 온 장인 배용석씨(52·경북 경주시 하동 291의7)는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대대로 옹기를 굽는 옹기 장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옹기 더미와 진흙 속에서 뛰놀았던 그가 신라 토기 재현의 명인이 된 것은 숙명적이기도 하다.
안동 사범 재학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경상도 최대 규모의 옹기 업을 가업으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말을 남겨 그는 가방을 싸 들고 돌아와 옹기장이가 되어야 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솜씨 탓으로 그는 얼마 안돼 수십 년 동안 옹기를 구웠던 종업원들의 재주를 능가했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한때 일손을 놓고 휴양을 해야 했다.
휴양 시절 경주 박물관에 들렀다가 쇠붙이로 만든 것 같이 보이는 토기가 신기해 한번 흙으로 구워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당시만 해도 신라 토기에 관한 자료를 접할 수 없었던 때라 그는 매일 토기 앞에 가서 스케치한 후 집에서 독학으로 연구했다.
박물관의 토기 전시관에 너무 자주 찾아가 그는 한때 토기 도둑으로 몰릴 뻔하기도 했다.
그는 그후 20여 년 동안 전국을 헤맨 끝에 경북 상주, 전남 광양, 경기 여주 일대의 흙을 섞어 쓰면 완벽한 신라토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그 동안 재현한 신라 토기는 1천3백여 종. 신라 토기는 백제나 가야 등 다른 토기에 비해 장식이 많고 화려하며 당시의 생활사를 그려 넣은 것 등 예술적 표현이 강한 것이 특징.
35년이란 세월을 토기 제작에 매달려 그 동안 10여명의 제자를 배출하기도 한 그이기만 1천여 점 중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한 해삼 유약 빛 토기를 기다리는 마음 졸임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고 했다.
점토를 배합해 입자가 고운 흙으로 만들어 물을 붓고 밟아 10일 동안 잠을 재운 후 만든 모형을 그늘에서 한 달간 건조시킨 다음 비로소 가마에 앉힌다는 그는 토기를 구워 낼 때 마음이 더없이 경건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전국 규모 및 경북 지방 공예품 경진 대회 등에서 30여 차례 입상하고 일본에서의 15차례 등 모두 30여 차례의 전시회도 가진 그는『좋은 흙과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진 토기는 음식 맛도 좋게 하고 신선도도 오래 유지하게 한다』며 토기 예찬론을 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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