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초등학교 원어민 교사들 '토종 영어교육 이렇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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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초등학교에서 정규 교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9월까지 모든 초·중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모 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굳이 영어전문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를 쉽게 접촉할수 있는 교육 환경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원어민 교사에게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할지'등 궁금하고 염려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1년을 보낸 원어민 영어교사 저스틴 브라운(미국·연은초), 페티 뵈처(미국·상신초), 콤 몽크스(아일랜드·성원초)가 이런 부모들에게 도움말을 주기 위해 13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동료 한국인 영어 담당 교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이들이 들려준 '한국 어린이가 한국에서 영어 잘 배우는 법'을 정리했다.

◆"자신감 가지면 절반은 성공"

▶저스틴 브라운=초등 5~6학년 수준의 한국 아이들에게 유창한 회화를 기대해서는 안 되죠. 완벽하지 않더라도 외국인들을 만나 자신이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도를 용기있게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하죠. 그런 자신감과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페티 뵈처=어린이들의 언어 습득 속도는 천차만별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수준도 다양하죠. 호기심을 말로 표현하려는 적극적인 성격의 아이들이 빨리 느는 것 같아요. 5학년이 끝날 때쯤 각 단원의 핵심 문장을 대화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콤 몽크스=아이들을 가르칠 때 편안한 분위기에서 말을 꺼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말할 수 있게 그룹을 지어 수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선생님에게는 틀릴까봐 걱정돼 못 하는 말도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에게는 쉽게 꺼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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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관심이 중요

▶저스틴=첫 공개수업을 할 때 생각이 나네요. 평소에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던 아이들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문을 여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아이들은 주위에서 관심을 보일 때 오히려 적극성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페티=학원에 보내는 것도 좋지만 부모들의 관심이 중요하죠. 부모가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해 영어로 질문을 던져보거나 하면 아이들이 더욱 신나서 배우려고 하겠죠. 자연스럽게 복습도 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저스틴=영어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노출될 수 있으면 좋습니다. 학원이나 학교 수업처럼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간보다는 진짜 영어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더욱 좋겠죠.

일찍 시작하면 좋지만 지나친 부담은 부작용

▶콤=1~6학년 아이들을 비교하자면 학년이 낮을수록 영어에 더 큰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증거겠죠.

▶페티=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성장 과정에 따라 배우는 양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좋아요. 5학년 아이들이 감당할 만한 학습량을 1학년에게 기대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죠.

▶저스틴=초등학생 때는 영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한국 문화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어만 이 목적이라면 어릴 때 영어권 국가에 가서 사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만 아이들의 여러 가지 능력이 균형있게 발달하기 바란다면 별로 좋은 선택이 못 되겠죠.

▶페티=저도 어린 학생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18세 이후 자신에 대해 결정할 수 있을 때 유학을 가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콤=너무 오랜 시간 아이를 붙잡아 두기보다는 재미를 잃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아요.교육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스틴=영어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야 될 것 같아요. 저도 수업 때 어떤 활동을 시켰더니 아이들이 즐거워 하기에 또 반복해 써먹으려다 아이들이 '저번에 했잖아요'라며 하기 싫어해 곤혹스러웠던 적이있었죠.

▶콤=영어 자체도 중요하지만 영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 언어적 매너 등을 함께 지도해야 해요. 그런 것들이 함께 발전하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보람이크죠.

글=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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