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이 본받아야할「미국의 경우」/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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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4대 국회의원 총선이 막을 내렸다. 미국 신문들도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정주영씨라는 평가와 함께 민자당의 참패를 크게 취급하고 있다.
경제에서의 새바람을 갈구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국민당의 표로 모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제 정씨는 현대라는 재벌의 총수가 아니라 원내교섭단체를 가진 주요당의 대표로서 중요한 공인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처신이 따라야함은 당연하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에 조지아주의 땅콩농장 주인이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후 이 땅콩농장을 신탁에 맡겨 경영토록 조치했다.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이행하며 행여나 땅콩농장에 이문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결정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부시 대통령도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을 신탁에 맡기고 있다. 작년 부시의 세금보고서에는 이 맡긴 주식이 오히려 값이 떨어졌다.
이를 신탁에 맡기는 이유도 자신의 주식값에 영향을 주는 정책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정주영씨도 정치에 참여하면서 현대그룹에서는 손을 뗐다는 발표를 본 일이 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정씨가 비록 손을 뗐다고는 하나 그가 현대의 이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현대가 맡고 있거나 앞으로 맡을 수 있는 주요한 대규모 관급건설공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업들이 공공의 이익과 직접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정씨의 입장에서는 공공의 이익과 현대라는 사적인 이익사이에 갈등을 겪어야 할 일이 부지기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씨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경우도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가 된 이후 우리국회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으며 신여소야대 상황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중대한 공적이익과 사적이익의 갈등문제를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당이나 정주영씨 자신은 국민들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케 해준 지지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제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14대 국회는 경제스캔들로 4년을 지새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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