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도 고개돌린 인신공격/오영환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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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혁명」­. 해방후 수십차례 있은 크고 작은 선거때마다 꼭 이뤄보자는 우리모두의 꿈이자 「시대정신」.
그러나 이 꿈은 「사랑방 좌담회」「고소장」에서도 아닌 단상에 선 선량후보들의 바로 「입」속에서부터 스러지고 있음이 14대총선 마지막 유세장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인간쓰레기」「도둑놈」「사회주의자」「변절자」….
서울 신림11동 난우국민학교에서 열린 관악을 선거구의 합동유세장.
『이번에 출마한 K당의 모후보는 오물탕에 버려진 인간쓰레기인데 이번에 다시 인간승리를 위해 나왔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소속의 모후보는 작년에 죽은줄 알았더니 죽지도 않고 또 나온 얼빠진 사람입니다.』
처음으로 등단한 무소속후보의 거침없는 인신공격성 열변.
이어 등단한 또다른 한 무소속후보는 한술 더 떴다.
『군사독재정권의 앞잡이였던 사람이 변절을 해서 얼마나 치부를 했으면 여당에서도 골수당원이라고 보겠습니까』『청문회 스타라고 하는데 웃기지 마세요. 그는 유권자를 버리고 탈당한 배신자입니다. 이 사회주의자에게는 한표도 찍어서는 안됩니다.』
이 후보는 경쟁자로 생각되는 두후보를 각각 「변절자」「배신자」로 매도한뒤 『관악주민 여러분,이런 사람을 국회로 보내서 되겠습니까』라고 목청을 돋우었다.
순간 『인신공격 그만해라』『할말만해라』는 청중의 분노가 쏟아졌고 이후보는 허겁지겁 공약 몇마디를 발표하곤 단상을 내려갔다.
그가 상대후보를 비방하는데 사용한 시간은 연설허용시간 30분가운데 26분. 그나마 나머지 후보들도 정견발표보다는 타후보의 말을 되받거나 지역개발 공치사 싸움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결국 마지막 유세는 후보들의 인신공격성 「욕설의 성찬」과 추태로 얼룩졌다.
후보들의 험담과 욕설이 만든 난장판 유세장.
후보들은 자신들이 휘두른 언어 폭력으로 철봉가에 매달린 채 귀를 쫑긋 세운 꿈나무들의 가슴이 얼마나 멍들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그리고 후보들은 무엇보다 단하의 유권자들이 왜 눈살을 찌푸리고 정치인을 불신하게 되는지 「입」을 통해 곰곰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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