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의회 의원숫자 줄이기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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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에선 지금 총선열기가 한창이지만 지난90년 통일을 달성한 독일에선 지금 통일이후 눈덩이처럼 늘고 있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의원수를 줄이자는 논쟁이 뜨겁게 진행중이다.
통일비용 등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독일에서는 최근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국회(연방하원)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주장을 야당인 사민당이 제기해 여야간에 찬반논쟁이 한창이다.
이 같은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독일의 재정적자 규모는 가위 전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원년인 90년 이미 1조 마르크(한화 약4백60조원)를 돌파한 독일의 중앙 및 주정부 재정적자 누계는 올 연말까지 1조3천1백10억마르크(약6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아가 93년 말에는 국민총생산(GNP)의 50%수준인 1조5천억마르크에 이를 것으로 독일의 재정문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막대한 재정적자문제가 조금이나마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구 동독재건에 2000년까지 매년 1천5백억마르크를 쏟아 부어야 하고 신탁관리청의 부채만도 94년까지 2천5백억 마르크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등 이대로 가다간 94년께 국가재정파산의 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이처럼 심각한 재정적자문제해결을 위해 사민당의 중간간부인 페터 슈트룩 의원은 통일이후 6백62석으로 늘어난 연방하원 의석을 2백석 줄인 4백60여석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슈트룩 의원의 제안에 대해 같은 사민당의 잉그리트 마테우스-마이어 의원과 집권 연립정부에 가담한 자민당의 율리우스 크로넨베르크 연방하원부 의장도 즉각 동조의사를 표시했다.
이들은 2억4천만명의 국민을 가진 미국의 하원의원숫자가 4백32명이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상기시키면서 인구 8천만명인 독일의 경우 많아야 5백명선이면 족하다면서 이 경우 의회의 1년 예산을 9천만마르크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집권 기민당 소속 리타 쥐스무트 연방하원의장을 비롯한 여당의원들은 반대의사를 표명, 여야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의원들은 의원숫자가 줄어들 경우 이제 의회민주주의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에 있는 구 동독지역의 정치발전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의석의 감소는 지역구의 확대를 초래,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독일의 1개 지역구 평균 유권자수가 9만1천3백명으로 현재도 이웃 프랑스(7만4천3백명)나 이탈리아(6만6천4백명) 보다 많은 상태에서 의석수를 줄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한편 여야간에 공방이 전개되자 사민당의 코르넬리 존탁 대변인은『의원감원안이 사민당전체의 의견은 아니며 사민당내부에 이견도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어쩌면 자신이 희생될지도 모르는 의원감원주장에 사민당 내에서도 반대하는 의원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슈트룩 의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정부의 3개 부처를 하나로 통합해 2명의 장관자리를 줄이고 14명의 의회담당차관직을 폐지할 경우 1백80억마르크의 예산 절감효과가 있다며 정부기구의 축소개편도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정부의 재정적자 타개를 위한 야당측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독일의 이번 의원감원논쟁은 여야가 합심해 국회의원 판공비나 올리고 의석수를 늘리는데 혈안이 돼있는 우리나라 정치권에 경종이 되고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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