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손가락으로 뇌물 요구하는 세무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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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앞으로는 세무 공무원이 펴보인 손가락을 세심하게 살펴 그 의미를 잘 분간해야 할 것 같다. 자칫 요구 액수에 턱없이 모자랐다간 청탁의 효과가 없을 것이요, 잘못 해석하면 요구액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줘야 할 판이니 말이다.

한 세무 공무원이 거액의 세금을 통보받은 납세자에게 1000만원 정도 받을 요량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고 한다. 납세자는 이를 1억원을 달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현금 가방을 건넸다. 이 세무 공무원은 뇌물 액수가 예상보다 많은 것을 발견하고 보름 뒤 그대로 돌려줬다.

검찰에 검거된 이 세무 공무원은 1심에서 1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간주돼 징역 5년형을 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당초 요구했던 1000만원만 뇌물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그제 "내심 100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뇌물을 요구했다가 1억원을 받은 뒤 돌려줬어도 1억원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판시했다. "먼저 뇌물을 요구해 돈을 받은 이상,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아 돌려줬다고 해도 뇌물죄를 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백번 맞는 얘기다.

아직도 세무 공무원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뇌물을 척척 갖다 바치는 일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뇌물을 받고 세금을 깎아 주는 세무 공무원은 국고를 터는 도둑이다. 손가락 하나에 얼마를 받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뇌물로 세금을 빼줄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뿌리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