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실망감·허무주의 반영|서정범 교수 작년 대학가 유머 집『우스개 별곡』서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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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유머를 통해 본 우리사회는 진실이 외면 당하고 거짓과 허구가 지배하면서 극도의 허무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별곡」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정범 교수(경희대)가 지난해 유행했던 대학가 유머를 모아 별곡시리즈 제8탄인『우스개별곡』(본보 7일자 18면 보도)을 펴냈다. 서 교수는 이 책에서 대학생들의 유머가 극도의 허무주의로 치닫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정치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사회현실에 대한 암담함과 중첩되면서 기대와 꿈이 사라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학생들의 유머를 분석해 살펴본다.【편집자주】
유머 가운데 정치 시리즈는 최근 선거운동에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있는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5공 비리에서부터 국제정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유행하는 정치시리즈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 일변도에서 최근 야당에 대한 질책도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질적인 지역성에 대한 힐난도 적지 않다.
유머를 통해본 유세장 풍경.
『국회의원 후보 부인이 밤에 피곤하다고 불평하자 남편이 나무랐다.「아니 당신이 뭘 했다고 피곤하다는 거요. 나는 오늘 하루에만 일곱 번이나 연설을 했지 않소.」그러자 부인이
「당신 말이 맞아요. 그렇지만 그 연설을 나는 다 들어야했단 말이오.」』
후보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려고 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한 주간 시사 지에 최근 정부측법안 몇 개가 그대로 통과되자 국회의원 반은 바보라는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이 사설이 나가자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그 사설을 취소하고 사과문을 내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다음주 사설은「국회의원의 반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고 정정했다.』
지역성도 빠지지 않는 소재.『전라도와 경상도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 있는데 포수가 나타났다. 경상도 참새가「수그려」라고 외쳤다. 경상도 참새들은 알아듣고 몸을 숙여 피할 수 있었으나 전라도 참새는 말을 못 알아들어 그대로 총에 맞았다. 전라도 참새가 떨어져 죽으면서 하는 말.「너그들 끝까지 배반해 부러야.」』
정치혐오와 함께 사회에 대한 풍자는 생명경시현상·부조리 등에 집중돼 있다.
『의사가 전신마취를 준비하고있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던 환자가 그것을 보고 저고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세기 시작했다.「여보세요. 수술비는 후불이에요.」의사가 말하자 환자가 대답했다.「알아요. 마취 당하기 전에 내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두려고요.」』
최근 붕괴사고를 빚은 건설업자들에 대한 풍자도 있다.
『불법건설업자가 하늘에 갔다. 옥황상제가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고 선택하라고 했다. 이 건설업자는 매일 기도만 하는 전당보다 술 마시고 춤추는 지옥이 좋아 보여 지옥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옥에 가보니 모두들 불구덩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아니 이것은 아까 위에서 본 것과는 다르잖아요.」그러자 저승사자 왈「임마, 아까 그건 모델 하우스야.」』
최근에는 퍼스널 컴퓨터와 데이터 통신의 발달로 이러한 유머의 확산속도가 급격치 빨라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 교수는『과거 한 시리즈에서 20∼30가지가 고작이었으나 최불암 시리즈는 무려 3백 75가지나 수집됐다』고 밝히고『이 가운데 절반은 퍼스널 컴퓨터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우스개 별곡』에서『젊은 학생들이 현실에 대한유머를 통해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자성의 기회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며『최근의 두드러진 허무주의 현상을 극복하고「밝은 웃음」이 펼쳐질 때 우리사회는 건강해 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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