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밤을 사랑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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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람이 추위지면
나이를 먹는다고 나는 느낀다
비오는 주말 오후
칙칙한 비가
내 가슴의 불타는 꽃을 적실 때면
나는 생각한다
각진 방에서 감자를 깎으며
세모 네모 각진 가슴을 물방울 꽃 피워
밥을 익히는 그 여자를…
사람이 추워지면
인생의 나이테를 그린다고 나는 믿는다
비 솟구치는 봄밤
할머니의 눈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감당하기 벅찬 인생의 촛불이
가만히 가만히 바람을 거느리고 있음을 본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
어느 가난한 봄밤 주름살처럼 저물 때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조용히 저물고 싶은
꽃 한 송이쯤은 황혼 속에 걸어둔다고…
봄밤 후미진 구석 빈 놀이터에서
새 한 마리가 창천으로 날아간다.
◇약력 ▲89년『문예중앙』신인상에 시 당선
▲시집『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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