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태도와 습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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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로기사들의 대국태도를 살펴보면 실로 각양각색이다. 시종일관 엄살을 부리면서 끙끙 앓는 사람, 상대방이 장고 하는 동안 남의 바둑을 관전하고 다니는 사람, 자주 찬물로 세수하는 사람, 착점을 할 듯 말듯 손이 바둑판 위에서 맴돌기 만 하다가 상대방 눈치를 힐끗힐끗 살피는 사람, 성냥을 통째로 갖다놓고 부러뜨리고 물어뜯는 사람, 하루종일 부채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사람, 아예 들어눕다시피한 민망한 자세로 대국하는 사람 등.
『졌네, 졌어』『다 죽었구나』『망했구나, 망했어』등이 흔히 사용되는 대표적 엄살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순박하던 시절에는 이런 엄살로 상대를 방심시켜 재미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도 금방 소문이 퍼지고 들통이나 나중에는 아무리 엄살을 떨어도 속는 사람이 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도 한국이나 중국기사들은 대국대도가 괜찮은 편이지만 일본 기사들 중에는 해괴망측한 대국태도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마잇타, 마잇타(졌다, 졌어). 탁, 탁』하며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부채로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긴다. 미친 사람의 발작과 같은 이러한 대국태도는 일본 프로기사들에게 많다.
작년 8월 서울에서 열렸던「아시아 TV 프로바둑 선수권 전 때 일본대표로 참가했던 대만출신 왕명완 8단의 엄살과 비명은 실로 요란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입회인이었던 필자도 깜짝깜짝 놀랐지만 대국상대인 중국의 조대원 9단도 크게 놀라 실수하는 바람에 다 이겼던 바둑을 역전 패 할 뻔했었다(조 9단이 가까스로 반 집을 이김).
프로는 아마추어의 스승이나. 따라서 바둑의 기술적인 면은 물론 이려니와 행동거지 모두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특히 TV바둑이 인기를 끌고있는 오늘날에는 프로기사들이 더욱 대국태도를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보통 공식대국과는 달리 TV바둑은 대국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전세계 프로기사가운데 가장 인품이.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임해봉 9단도 대국도중 부채를「딱, 딱」소리내며 주무르는 습관이 있어 이창호 5단과의「동양증권 배」대국 때 시청자들의 항의가 쇄도했었다.
『프로기사가 수 읽기에 몰입하면 옆에서 대포가 터져도 잘 들리지 않는 법』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정작 대국상대인 이 5단은『아무렇지도 않다』는 얘기였지만 KBS-TV의 생중계를 보던 시청자들에겐 대단한 거부감을 주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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