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앞으로 1년이 더 중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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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꼭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란 4년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보면 한 지도자,또는 한 시대가 표방한 이상과 지나온 족적 사이의 괴리를 새삼 느끼게 된다.
한 지도자가 신념을 갖고 추구한 일이 별 볼것없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회의와 의구심으로 바라본 것이 뜻밖의 성과를 거두는 예를 보아왔다. 이것은 불가측성이 가져다주는 정치의 묘미이기도 하며,노대통령에게 있어서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나간 4년 교훈 삼도록
돌이켜보면 그의 재임 4년은 민주화의 질풍노도가 온 나라를 휩쓴 격동기였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기도 했고 또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민주화의 포만감이 권위주의 시대의 퇴조를 실감시킨 반면,이행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은 민주화 추진으로 인해 최소한 지켜야할 가치와 규율이 무너지고 경제가 뒷걸음질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임기가 아직 1년이나 남은 대통령을 놓고 이 단계에서 그의 공적을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년은 지나온 4년에 비하면 짧은 세월이지만 한 지도자가 마음먹고 하던 일을 마무리짓는데는 결코 짧기만한 시간이 아니다. 때문에 노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의 1년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며칠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남은 임기 1년동안 전념해야 할 일로 공명선거를 통한 6·29선언의 완결과 경제회복 노력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목표설정은 백번 옳다고 본다. 그가 최소한 이 두가지만이라도 효과적으로 추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만있다면 지금까지 그에게 따라다녔던 정책집행상의 무실이란 비판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흔들렸던 법치와 공권력의 권위상실을 상기할때 그가 국민들은 믿음을 회복하는데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현 정치판의 구성과 퇴임후의 위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공명선거의 단호함을 얼마나 행동으로 입증하겠느냐가 문제다. 대통령이 아무리 공명선거를 외쳐봐야 먼저 정부·여당이 따라주지 않고,또 가까운 사람들이 잡음을 일으키면 결과는 공염불이라는 사실을 심각히 인식하고 철저히 챙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내리막길로 들어선 경제가 대통령의 노력으로 1년만에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 초조한데서 오는 지나친 적극성이 더 큰 실수로 연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때문에 대통령의 비상한 각오는 필요하나,이제와서 지나친 성취목표를 제시하기 보다는 현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는 쪽에 비중을 두는 것이 현실적이다. 경제는 정치의 시험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기말이 임박한 대통령에게는 늘 권력이양과정의 불안,퇴임후 위사을 둘러싸고 자칫 무리수가 발생할 여지가 큰 법이다.
○끝까지 잡음없게 최선을
바로 전임 대통령에게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직전에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지나치게 강화하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각료들에게 훈장을 남발해 빈축을 샀던 일은 그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또 대통령 중심제의 모범국인 미국에서 임기 1년전부터는 현직 대통령이 국가안보등 긴급을 요하는 일 말고는 중요이권사업이나 정책결정을 삼가는 예를 참고했으면 한다. 임기말의 대통령에게 불요불급한 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생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끝까지 인사에 공평했다는 평을 듣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노대통령에게는 정치일선에 뛰어든 친·인척이 있고 대기업을 경영하는 사돈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과를 거둔 북방정책은 서두르지 않아도 이미 좋은 평가를 얻고 있으며,이미지 홍보 또한 더이상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권력이동에 마음 비워야
우리는 대통령의 퇴임후 위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문제에 정부와 국민이 좀더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할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더욱 굳건히 하는데는 대통령이 후고의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기관이면서 폐기상태에 있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적절한 수준으로 되살리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노대통령 스스로가 권력이동에 마음을 비우고 임하는 일이다. 권력은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하더라도 후임자가 시비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분란을 야기할 수 있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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