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탁아소예산 배정/박태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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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탁아소에 대한 예산 추가배정을 놓고 예산당국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12일 노총회관에서 열린 「노사관계 사회적 합의 형성회의」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주부인력활용을 위해 올해 예산절감액중 1천억원을 투입해 탁아소를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정부가 올해 중앙정부예산중 소비성 경비 약 3천억원을 줄여쓰기로 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1천억원을 돌려쓰면 될듯 하지만 그것은 간단치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게 예산 실무자들의 판단이다.
국회심의를 거쳐 확정된 예산을 고치려면 국회에 다시 추가경정예산안을 올려 심의받아야 한다.
정부가 올해 줄여 쓰겠다고 나선 3천7억원은 정부 각 부처 예산중 소비성 경비로 분류된 여비·특별판공비 등 17개 비목에서 조금씩 떼어내 합산한 금액이다. 원칙적으로 이들 절감예산은 당초 정해진 용처에 쓰든지,아니면 정부발표대로 올해 쓰지않고 불용예산으로 처리,내년으로 넘기든지 해야 한다.
만약 이 돈을 탁아소 건립 지원같은 다른 용도에 쓰려면 이미 국회에서 확정된 각 부처의 예산에서 이들 절감대상 예산을 빼내 관련부처인 노동부나 보사부의 해당 비목에 몰아줘야 한다. 그러자면 문자 그대로 전체 정부예산을 처음부터 새로 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3천7억원의 절감예산이란 것이 어느 큰 항목 하나를 뚝 떼어내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긁어 모아 이뤄진 것이어서 이 돈을 쓰자면 엄청난 「숫자맞추기」작업이 불가피하고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예산 실무자의 얘기다.
물론 이같은 무모한 작업을 해 추경예산을 짠다해도 국회통과여부는또 별개의 문제로 남게된다.
따라서 탁아소 건립에 1천억원을 추가로 배정키 위한 재원은 이미 용처가 정해져있는 절감대상 예산이 아니라 작년에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이라든지 또는 올해 세입예산안에 잡혀있는 것보다 더많은 세금이 걷힐 것으로 보고 새로운 세입예산을 짜 충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세입예산을 빡빡하게 짜 세수초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온데다 기본적으로 올해는 재해복구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경편성을 하지 않겠다고 누차 공언한 바 있다. 인력난 속에서도 수많은 여성인력이 사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탁아소 건립 확대의 필요성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 필요성과 예산배정은 지난해 예산심의때 논의되었든지 내년 예산을 짤때 다시 검토되야지 새해가 시작된지 채 두달도 안돼 정부가 만들어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안을 손질하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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