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회 KT배 왕위전' 다 잡은 대어를 놓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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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예선 하이라이트>

○ . 조한승 9단 ● . 서중휘 초단

소문난 강자에겐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이 있다. 그를 상대하는 햇병아리(?)의 입장에선 형세가 유리하다고 해도 이기기까지의 길이 아득해 보인다. 사소한 변화에도 신경이 곤두서고 바늘구멍만한 약점이 동전만 하게 보인다. 초읽기까지 가세하게 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그때 이상한 힘이 손의 방향을 튼다. 통한의 패배가 그렇게 이루어진다.

장면도(181~192)=백△ 두 점을 수중에 넣은 흑이 간발의 우세를 잡았고 그 후 몇 수가 더 진행된 상황이다.

서중휘 초단이 181로 막자 백도 182를 선수한다. 한데 여기서 초읽기에 몰린 서중휘의 손이 183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조한승 9단은 즉각 184로 잡았고 흑도 183으로 석 점을 때려냈다.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는 어찌 됐을까.

아쉽게도 바둑은 이 한 방으로 역전되고 말았다. '참고도' 흑1로 받아 두었으면 미세하지만 흑승이었다. 서중휘는 상대가 패로 버티며 2, 4로 도발해 오는 수단을 겁냈다. 그러나 이 수단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설령 성립된다 하더라도 별 게 아니었다.

손익을 계산해 보자. '참고도' 흑1은 7집 반. 실전 184로 잡힌 것까지 계산하면 11집 반. 실전에서 흑은 4점을 빵따냈는데 이 크기는 잘 봐줘야 9집. 게다가 흑의 중앙이 엷어졌다.

이 판은 결국 240에서 백이 불계로 이겼다. 서중휘 초단은 바로 눈앞에 열려 있는 승리의 사과를 손을 뻗어 따내기만 하면 되는 장면에서 머뭇거렸다. 이상한 의심이 그를 사로잡아 옆길로 인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승부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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