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무는 「북한핵 의혹」/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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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사찰을 받겠다고 핵안전협정에 서명까지 마친 지금에 와서도 이 의문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이 믿고 있는대로 조만간 원폭을 제조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제사회의 이단아로 등장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과 관련,최근 오스트리아 빈의 IAEA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네가지 시나리오는 흥미를 가져볼만하다.
첫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그동안 연막전술을 써왔다는 설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핵개발을 추진하는 듯한 냄새를 일부러 풍김으로써 최대한의 실익을 얻으려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주한 핵무기철수와 팀스피리트 훈련중단,미국과의 고위급회담 실현등 많은 성과를 얻은게 사실이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그동안 핵개발을 추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적 압력이 워낙 거세자 이를 최근 포기했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그동안 건설해온 핵시설을 최근들어 다른 곳에 은닉하고 있으며 은닉시간을 벌기위해 협정발표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마지막은 이라크식 자포자기 시나리오로 협정서명에 이어 비준도 하곳 사찰도 받지만 이와 관계없이 은밀한 핵개발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울지 현재로선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세번째나 네번째,특히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듯하다는게 미국의 정보능력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일 뿐이다.
반면 핵제조의사도,능력도,필요도 없다는게 북한측의 일관된 주장으로 그동안 협정체결을 미뤄온 것은 다만 북한주민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해온 주한 핵무기를 제거시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북한측은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데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아니면 적어도 두번째 시나리오가 진실이길 바라는 것이 현지 취재기자로서의 소망이다.<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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