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인물」이 사건노출 기도/검찰이 재구성한 시험지 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복제된 열쇠로 드나들며 유리깨고 현장 흐트린듯
서울신학대 후기대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의 전면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이 학교 경비원 정계택씨(44)를 범인으로 단정했던 경찰 수사를 백지화,특정한 목적으로 「제3의 인물」이 시험지를 훔쳐낸 것으로 보는등 범행현장을 재구성하면서 정씨는 단순가담 종범으로 현관문을 열어줘 시험지를 훔쳐가도록 도와준 것으로 경찰과 사뭇 다른 판단을 내려 수사결과가 크게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당초 정씨가 교무처 왼쪽 출입문 윗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전산실에서 시험지를 훔친뒤 그 출입문의 걸쇠를 열고 밖으로 나와 사다리를 타고 몸을 구부려 걸쇠를 걸어 위장했다는 경찰에서의 진술이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씨의 머리카락이나 점퍼·신발 및 유리창을 깨뜨렸다는 각목 등에서 유리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종이상자를 찢은 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현장에서의 절취과정에 대한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점으로 비춰 정씨가 시험지가 있었던 내부에까지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씨는 사전 약속에 따라 본관 현관안쪽 쇠사슬자물쇠를 열어놓은채 경비실로 갔으며 「제3의 인물」이 교무처의 2개 출입문등 오른쪽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시험지를 빼낸뒤 다시 들어간 문으로 나와 자물쇠를 잠그고 사건노출을 위해 왼쪽 출입문 유리창을 깨뜨리고 달아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당시 경비원 정씨가 현관·전산실 출입문 열쇠와 마스터키를 갖고 있었으나 보조자물쇠가 부착되어 있는 오른쪽 출입문 열쇠는 마스터키로 열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자물쇠의 키는 사전에 복제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이모 전 교무과장(38)등 오른쪽 출입문의 보조자물쇠키를 갖고 있는 교무처직원 3명을 집중조사한 것도 이 키가 사전에 복제유출되었을 가능성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검찰은 정씨가 당시 다른 경비원 이용남씨(25)에게 『경험이 없으니 나혼자 본관순찰을 돌겠다』며 이씨를 정문경비실로 보낸 점과 본관내에서 잠을 자지 않고 경비실로 가 이씨와 함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고 ▲이씨를 감시하기 위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범인이 시험지가 보관된 장소를 사전에 잘알고 있었음에도 전산실 바깥 교무처내 캐비닛을 열어 의도적으로 서류 등을 흐트려 놓은 점은 사건의 노출을 원했던 것이며 이로 미뤄 밖으로 나가 유리창을 깨뜨린 것도 범행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사건의 외부노출을 기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정씨가 단순하게 시험지의 누출에는 동의했지만 범인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건의 외부노출」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씨가 사건발견 당일 두 차례나 뒷산을 오르려 한 것은 뜻밖의 결과에 당황,도주하려 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정씨가 자신의 교회담임목사를 만났을때 『내가 뒤집어쓰고 끝까지 있을까요』 『나는 범인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결국 도난당한 시험지는 이미 제3의 인물에 의해 유출되어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정씨가 시험지의 행방에 대해 자주 진술을 번복해온 점도 이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부천=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