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뛴 민주당 요즘 문지방 닳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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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는 꽁초를 꾹꾹 눌러 껐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 내에 열린우리당과 합치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게 사실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잠시 말을 멈췄던 그는 “열린우리당의 얼굴, 간판으로 활동한 사람과는 절대 함께 못한다”며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흥분한 탓인지 라이터가 자꾸 헛돌았다.

민주당이 3일 전당대회를 연다. 평소 같으면 의석 11석짜리 정당이 새 대표를 뽑는 일에 큰 관심이 쏠리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민주당이 이른바 범여권 대통합 논의의 핵심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 정치권 밖의 진보세력 모두 그럴싸한 통합의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민주당의 몸값은 더 뛰었다.
대표 경선에 나선 사람은 다섯 명이다. 박상천 전 대표 외에 장상 전 대표, 김경재ㆍ김영환ㆍ심재권 전 의원이 뛰고 있다. 현재까지는 박 전 대표가 앞서 있고 장 전 대표를 비롯한 다른 주자들이 추격하는 양상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본인과 당원들에게야 중요하겠지만 사실 누가 되느냐는 외부인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새 대표가 들어선 민주당이 통합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훨씬 많은 눈길이 쏠린다. 일단 다섯 후보 모두 통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통합의 시기ㆍ대상에 대한 견해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장 전 대표는 “누구와 통합할 것이냐는 국민을 의식해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을 개개인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와는 조금 다른 주장이다. 다른 세 사람도 각각 미묘한 입장 차가 있다.

후보 본인의 생각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그들을 지지하는지도 봐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원외 지역위원장(옛 지구당 위원장) 상당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엔 통합에 부정적인 사람이 상당수다.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호남에서 특히 그렇다. 호남의 한 지역위원장은 “올해 대선에 지더라도 내년 18대 총선에서 강한 야당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통합을 해도 (열린우리당 및 탈당파의) 호남 의원들은 한 명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장 전 대표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를 미는 한 고위 당직자는 “이대로 있다 대선에서 진 뒤 총선에서 ‘호남당’ 하자는 건데 절대 불가능한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선에서 양강 구도에 끼지 못하는 정당은 총선에서도 몰락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다른 고위 당직자도 “호남 사람들 정치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국회의원이나 한 번 해먹겠다는 생각을 하다간 뼈도 못 추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경선과는 별도로 물밑에서도 복잡한 통합 방정식을 풀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동교동계인 설훈 전 의원은 “대표 경선 전에 박 전 대표와 만나 통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며 “누가 새 대표가 되든 결국 통합의 흐름을 거스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통합파인 그는 그간 열린우리당ㆍ민주당 인사를 가리지 않고 만나왔다.
전당대회 이후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요즘 국회 의원회관 민주당 의원들의 방에는 유난히 범여권의 다른 정파 소속 의원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4월 중에 통합 교섭단체 구성 등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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