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조짐 보이는 미·북한관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북한관계의 전기가 될지도 모를 양측의 고위급 접촉이 22일 뉴욕에서 이루어 진다.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의 이 접촉은 결과도 주목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 정치적 의미란 우선 미국의 대북한자세가 변화신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북한으로서는 대미 직접접촉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았다는 점이다.
대북한관계개선 조건을 내놓고 완강하게 접촉을 거부하던 미국의 자세가 바뀐 것은 물론 최근 북한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남북한 접촉을 통해 핵포기의향을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우선 제한적이나마 접촉의 격을 높여 직접 그 진의를 타진해 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접촉사실을 밝히며 미 정부당국은 핵문제를 우선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북한이 핵문제에 관한 미국측의 의혹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폭넓은 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만 풀린다면 그동안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 조건으로 내세웠던 ▲테러포기 ▲남북한관계개선 ▲미군유해송환등도 함께 연계돼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미·북한간의 직접대화 필요성은 늘어나고 고위급 접촉이 정례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미·북한관계가 개선된다는 것은 북한­일본의 수교협상과 아울러 한반도 주변정세가 국제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2+4」형식에 의한 한반도 평화보장의 틀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최근 이 「2+4」구상이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힐 만큼 관심을 보인 적이 있어 그런면에서 미·북한사이에 의견교환도 가능할 것이다.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존립을 미국·일본등 주변국가들로부터 보장받는 방법으로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한반도문제 해결에 주변국가를 너무 깊숙히 끌어들일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 신중한 정책을 취할 수 있다면 북한의 대미접촉은 한반도의 장래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도 있다. 남한으로서도 북한이 미국·일본등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국제적 협정과 의무의 틀속에 행동 할 수 있게 되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기대는 물론 북한이 새로운 시대조류에 적응하고 종래의 대남혁명노선을 완전포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과의 접촉에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온 평화협정 체결이나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번 뉴욕에서와 같은 접촉은 우리정부와 미국의 긴밀한 협의 가운데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적어도 우리정부와 미국정부가 전제한 조건이 충족되는 미­북한간의 접촉과 관계개선이라면 환영해도 좋으리라고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