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사망자 명부 정부가 “사장”/71년 일서 넘겨받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팽개쳐 오다 유족요청에 찾아내/2만여명 명단수록… 지방 국세청 창고등서 발견
일제때 강제 징집당했던 한국인 사망자 염부가 행방불명 되었다가 뒤늦게 각지방의 세무서등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발견돼 특히 일제와 관련된 치욕의 사료 보관에 소홀한 정부의 평소 태도가 새삼 문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내의 희생자 유족들이 우리정부의 지난 71년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사망자 명부의 소재를 확인해주도록 요청하자 최근 재무부가 각지방의 국세청이나 정부 문서보관서 등을 뒤져 사망자 명부를 찾아냈다.
태평양전쟁때 군인·군속 등으로 끌려가 사망한 2만1천7백9명의 명단이 수록된 이 문서는 71년 대일 청구권협상이 타결되면서 피해자 유족들에게 1인당 30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외무부가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넘겨받아 보상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재무부가 참고자료로 썼던 것.
보상절차는 77년 종결되었고 단순히 정부의 문서보관 관련 규정에 보상업무 참고자료를 5년간 보관한후 폐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이유로 83년 이후엔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도 이 귀중한 사료를 별도로 챙겨오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난해 일본정부가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에게 당시의 사망자 명부를 한국 외무부에 넘겼었다는 회신을 보내오자 당시 보상업무를 담당했던 재무부가 근 10년이 넘은 지난 연말부터 문서 수색에 나서 최근 전10권중 9권을 찾아냈고 나머지 1권도 곧 입수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사망자 명부가 찾아졌다 하여 새삼 보상문제가 거론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나 희생자의 생사여부를 확인해 사망신고·호적정리 등을 하는데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뿐 아니라,그 이전에 치욕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생각할때 독립기념관등을 세울 생각은 하면서도 이같은 문서 보관에 소홀해왔던 우리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새삼스런 반성의 계기가 된 셈이다.
재무부는 앞으로 대한적십자사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이 자료를 복사,정부문서보관소·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독립기념관 등에 비치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지역별로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곳은 전라남북도로 해군 5천2백46명·육군 1천7백32명이었으며 희생자가 가장 적었던 충청 남북도는 해군 1천9백40명·육군 8백45명,이밖에 이북5도는 해군 1천2백67명·육군 2천3백1명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