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마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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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돈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 그는 언젠가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재단으로부터 1천5백달러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을 현금으로 바꾸지 않고 책상위에 그대로 두었다가 책을 보던 끝에 수표를 책갈피에 꽂아 두었다.
얼마후 보니까 수표가 없어졌다. 그런데 수표뿐 아니라 읽던 책도 누가 집어가 버렸다. 아인슈타인이 혼자 중얼거렸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책까지 돈을 따라갔으니….』
돈이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돈이라면 신도 웃는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돈이 막강한 정치권력과 밀착하면 그 위력은 눈덩이처럼 부풀게 마련이다. 이름하여 「정치자금」.
일반적으로 권력을 만들어 내는 권력자원은 돈과 조직·정보를 꼽는게 상식이다. 그중에서도 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돈만 있으면 조직도,정보도 마음대로 손안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데는 많은 돈이 든다. 특히 의회제도가 생긴이래 정치자금은 정당을 운영하고 선거를 치르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정치자금이 정당정치를 받치는 동력이라기 보다는 뒷거래나 정경유착 등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는 「악의 근원」이 돼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자금이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비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철저하게 베일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자금을 둘러싼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권력남용 등 음성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게 바로 우리의 정치풍토인 것이다.
엊그제 한 재벌의 총수로 신당을 창설한 정주영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막대한 정치자금을 권력층에 진상했다고 밝혔다. 한꺼번에 1백억원을 바친 일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웃돕기」라는 명목을 단서로 달기는 했지만 그 돈이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그런 돈을 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반대급부를 겨냥했든지,아니면 스스로의 어떤 약점이 있었든지,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이었든지….
문제는 그 돈이 「떳떳한 돈」이 아니라는데 있다. 돈의 가치는 그것을 소유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특히 정치자금에 있어서는 말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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