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 돌아간 「대권논의」/노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 담긴뜻(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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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예상깨고 자유경선에 강한 의지 표시/자치단체장 선거연기 총선 쟁점될 듯
10일 노태우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민자당내 대권문제는 예상을 깨고 자유경쟁선거에 상당한 비중이 두어져 있다.
노대통령은 차기 대통령후보가 국회의원총선이 끝난뒤 전당대회에서 『당헌에 정해진대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6공이 출범한뒤 각부분에서 활발한 민주화·자율화가 이루어지고 국민학교반장도 선거를 하는 마당에 집권당이 어느 사람을 지명,내정하는 것은 「모독」』이라는 실감나고 결연한 표현으로 그의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자유경선이 아닌 내정방식에 대해 『진짜 국민의 뜻이 아니라 지나친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뜻』이라고 규정하고 『자유경선이 아닌 것은 민주주의를 신념으로 삼는 김영삼 대표의 인품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단호한 의사표현은 그동안 「김대표 후보내정설」「노대통령의 김대표지원설」을 완전히 뒤엎는 것으로 대권후계 문제를 새롭게 정리,해결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기자회견 직전까지 당주변에선 총선후 전당대회를 하는 대신 김대표가 후보로 유력하다는 소위 「후보 가시화」의 수준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돌았으나 노대통령은 이를 깨버린 것이다.
주목되던 노대통령의 김대표에 대한 「언급」은 『14대 총선거는 김대표가 중심이 돼 두 최고위원(김종필·박태준)이 합심·협력해서 치러질 것』이라는 것 「이외」에 두드러진 대목은 없다.
더구나 「김대표 중심…」이란 표현은 과거 노대통령이 써오던 김대표에 대한 지칭을 넘지 않고 있는 것도 예상과 빗나간 것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발언은 총선전후보가시화를 반대해온 민정·공화계를 크게 고무시키는 내용으로 대권문제는 새로운 출발점을 찾은 것이며 노대통령은 누구에게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는 대통령후보 자격이 인물군으로 ▲국정경륜을 갖춘 민주인사 ▲3당통합의 참뜻을 계승한 인사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인사 ▲북방정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사로 나열했다.
이런 적격기준에 맞느냐,김·박최고위원이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며 후보경쟁대열에 누구도 나설 수 있음을 강조하려는데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노대통령은 그런 자격열거가 『속으로 다른 뜻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고해 김대표와의 묵계가능성조차 배제했다.
이는 「총선승리」라는 대명제로 김대표의 요구를 덮어버린 것이다.
노대통령의 회견내용을 보아선 「총선전 후보확정」이란 배수진을 깔고 밀어 붙였던 김대표로선 뚜렷한 소득을 얻지 못한 셈이 됐다.
오히려 노대통령은 『미국같은 경우도 선거 3,4개월전에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를 정하고 있다』고 해 전당대회시기(5월)자체를 한두달 늦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김대표가 9일 오후 노대통령이 참석한 4자회동이 끝난 뒤 『결과에 만족한다』고 한 것은 의구심을 남기는 대목이다.
김대표가 자유경선에 자신이 있어서 흡족하다는 의사를 표현했는지는 미지수이며 노대통령특유의 「벼랑끝 승부」에 김대표가 안일한 판단을 했다는 관측도 있다.
물론 김대표계 일각에선 노대통령과 김대표간의 별도 지원약속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으나 이날 노대통령의 자유경선에 대한 강한 의지표시로 미뤄 설득력이 없다.
노대통령은 총선을 대권후계구도의 「변수」로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고 총선전 후보를 가시화하면 「레임덕」(권력누수)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날 회견은 또 남은 임기 1년2개월간의 정치일정의 단순화와 경주력의 의지과시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노대통령은 국회의원총선→기초자치단체장선거→광역자치단체장선거→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금년 네차례 정치일정중 두번의 단체장선거를 임기뒤로 넘기고 내각제 추진 포기를 선언해 볼 확실한 상태에 있던 정치일정을 압축,명료화시켰다.
그는 단체장 선거연기 이유로 『경제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경제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설자리를 잃게 된다』고 강조,경제침체를 그 이유로 내걸고 있으나 이 자체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고 국회의원선거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날 회견을 계기로 민자당내 대권문제는 총선이후로 넘어 갔고 당은 총선체제로 급격히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김대표나 민주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분명하나 김대표로서도 이제 대권문제로 탈당하다든가 반발하기는 어렵게 될 것 같다.
김대표가 무리없이 수용한다면 의원들의 관심은 공천에 쏠릴 수 밖에 없으며 민정·공화계의 반 YS(김대표)라인과 김대표 진용은 「후일」을 위해 총선승리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노대통령은 이날 경제활력과 남북문제에 전념할 뜻을 밝혔지만 대권문제와 총선관리가 뜻대로 되느냐에 따라 성패여부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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