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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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현실 인식이 일반 국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참여정부'라며 여론 수렴을 중시해온 이 정부가 이렇게 민심을 모르고 있다니 한심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회복이 안 되고 있는데 대통령은 재신임 등 중요 정치현안들을 계속 안개 속에 감추고 가겠다고 한다. 정말로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盧대통령은 "재신임 문제가…무슨 경제나 민생에 부담을 주느냐" "책임을 허겁지겁 벗으려 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은 재신임을 무슨 큰 정치적 카드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가부간에 결론을 내지 않고 최대한 끌고 가겠다는 계산을 하는 모양인데 바로 그런 정치적 계산이 나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재신임투표를 사실상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지금같이 모호하게 끌고 갈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재신임을 하든, 안 하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당당한 태도다. 또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를 이리 저리 재고 미루는 것도 당당하지 않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총선에서 평가받는 것이 떳떳하다.

盧대통령은 "정치인을 정치행위로 평가해야지 도덕적으로 얼마나 깨끗하냐를 물으면 안 된다"고 했다. 또 측근들이 검찰수사를 받는 것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가깝지 않았더라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 (나 때문에) 수난을 겪으니 가슴이 아프다" "고통을 제물로 바치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다른 당을 부패했다고 비난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하면 정치적 행위니까 괜찮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부도덕한 것인가. 매사를 이런 이중잣대로 보니까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측근비리에 대해 盧대통령의 인식이 이 정도이니 특검법안을 거부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盧대통령이 좀더 열린 마음으로 여론을 수렴해주기를 당부한다. 특히 정치의 불확실성을 정리해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은 하루라도 미룰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