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되레 큰소리치는 교육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엊그제 만난 교육부 공무원 A씨는 "고교생 아들의 학원비가 월 200만원이 넘어 죽을 맛"이라고 했다. 한때는 그도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EBS 수능방송을 보면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들이 고3이 되니 불안해서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없더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학생부와 수능과 논술을 다 잘해야 하는 2008학년도 '죽음의 트라이앵글' 입시가 애들을 잡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새 대입 제도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기 자녀가 수험생이 되면 교육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현실적이 된다. 현재의 대입 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한지도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감도 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여전히 현실을 무시하는 탁상공론식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교육부 공무원들도 자녀를 두고 있고,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어지고 있으면서.

한 가지 힌트는 있다. 지난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부를 방문했다. 거기서 현재의 교육정책을 극찬했다. 대통령은 "(교육부가) 참 잘하고 있다. 초.중등학교에서 창조적 교육, 건강한 시민교육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칭찬했다. 인사권을 쥔 대통령의 발언에 교육부 관료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물으나마나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선, 또 일반 시민의 관점으로 봐도 정말 생뚱맞기 그지없다. "지금 교육부가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지금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쏟아내는 근본 원인은 결국 정치권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느라고 그렇다는 것이다. 교육부 장관만 되면 한결같이 예전에 자신이 했던 주장과는 정반대의 말을 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수시로 눈이 멀거나 귀가 막히는 것 같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최근 "고소득층은 사교육비가 급증했지만 중하위층은 방과후 학교 등에 힘입어 사교육비가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맞는 분석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집 형편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학원비가 치솟고 있어 학원 보내기를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은 이런데 사교육비가 월 평균 1만원 줄어든 통계를 제시하면서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공교육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부터 내놓고 그런 자랑을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싶다.

교육부는 억지도 심하다. 일부 대학이 올 입시에서 수능 비중 확대 전형을 내놓자 "뒤통수를 맞았다"고 분개했다. 교육부는 올해 입시가 성공할 것이라고 자랑해 왔다. 지난해부터 대학 총장들을 압박해 내신 비중을 50%까지 높이도록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대학은 교육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지 않는 건 그 물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먹기 싫은 음식을 입에다 마구 처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게 세상살이의 기본 이치다. 하지만 교육부는 거꾸로 간다. 소비자 격인 대학과 학생들이 싫다는데도, 못 하겠다는데도 마구잡이로 떠먹이려고 안간힘이다. 그러고는 "왜 이걸 안 먹느냐"고 되레 큰소리친다.

모든 걸 종합하면 결론은 간단하다. 자신이 학부모가 됐을 땐, 자녀가 입시를 치를 땐 현실로 돌아왔다가 곧바로 이해관계를 찾아 원위치하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문제다. 교육부에는 나쁜 관행이 세 가지 있다. '코드 맞추기, 현실 무시하기, 억지 부리기'다. 이것이 깨지지 않는 한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도 깨지긴 힘들 것 같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