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파동 대책이 허술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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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가문제가 보통일이 아니다. 이미 11월까지 오른 소비자물가만으로도 금년도 억제선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82년 이래의 최고상승폭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통계로는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가까스로 한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계지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장바구니물가와 체감물가는 올들어 50%나 올랐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층 더 걱정스러운 것은,물가상승이 단순히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쉽사리 치유하기 어려운 악성 인플레구조가 우리 경제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즉 경제의 각부문에서 가격인상압박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한부문의 가격인상은 대단한 인화력으로 다른 부문에 번져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고임금­고물가의 악순환이 인플레구조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고금리,수송난,유통질서의 혼란이 물가를 부채질하고 있으며 물가와 관련된 정치적·사회적 여건 역시 물가안정을 해쳐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작년에 이어 2년째 계속된 물가불안이 내년에는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물가정책의 실패에 큰 책임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국제수지의 적자팽창에 대한 대응책으로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유난히 강조해온 정부로서는 경쟁력 강화의 주요과제인 물가안정을 위해 총수요관리를 얼마나 체계있게 효율적으로 추진해 왔는가를 반성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금년의 물가구조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도매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상승률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산지배추값이 1포기에 70원인데 최종 소비자 가격은 심할 때는 7백원을 웃돌았다.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물가억제에 정부가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도 의문이다.
금년에 큰 폭으로 올랐던 공공요금이 내년초에 한번더 뜀박질을 할 예정이다. 철도·전기·우편·버스요금·국공립대학등록금·중고교 수업료등 10여가지에 이르는 공공요금의 인상러시에 곁들여 서울시는 지하철·상하수도·쓰레기수거료를 별도로 인상할 계획이다. 이 틈에 음식값·이발료·목욕료등 각종 개인 서비스요금이 덩달아 뛰어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가격인상요인을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자체 흡수하려는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먼저 정부부터 요금인상 이전에 강구할 수 있는 모든 가격억제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정부가 가격 올리기 경쟁에 앞장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 경쟁국들의 물가가 3% 안팎의 수준에서 안정돼 있는 동안 국내 물가가 그것보다 3∼4배나 높게 치솟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이미 기울어진 수출경쟁력은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인플레경보가 울려 퍼지는 속에서 이제는 정부만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에 결정타를 가할지도 모르는 물가파동의 회오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가계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보다 강도 높은 절약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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