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50주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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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미국과 일본 두나라의 매스컴들은 오는 7일로 다가온 일본의 진주만 기습 50주년을 맞아 저마다 회고와 재조명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미국의 언론들이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 진주만의 궁극적인 승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의 언론들은 느긋하게 당시의 전투상황이나 전쟁영웅들을 회고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지난주 뉴스위크지는 전쟁책임을 인정않는 일본이 오히려 히로시마 원폭희생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하면서 기업가의 옷을 입은 일본군단이 미국의 산업을 무차별 폭격하는 「제2의 진주만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경고했다.
지난달 타임지도 요즘 일본인들의 둔감과 오만을 비판하면서 일본 내에서 점차 시장성을 갖기 시작하는 반미서적류의 동향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영향력 있는 월간지 프레지던트는 12월호에 바로 진주만 기습의 작전 입안자며 침공군의 총책임자인 야마모토(산본오십육)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1백쪽이 넘는 대특집으로 엮고있다.
「인간 산본과 태평양전쟁」이란 제목의 이 특집은 작가·교수 등 10여명의 필진이 동원되어 전략가로서의 그의 천재성과 함께 이른바 「대아시아시대의 영웅」으로 그를 부각시키고 있다.
진주만기습 50주년을 앞두고 야기되는 이같은 미국과 일본 국민간의 미묘한 감정대립은 여러곳에서 나타난다. 그 한예가 요즘 미국인들 사이에 널리 번지고 있는 반일유머다.
미국인과 일본인이 천국문을 두드렸을때 성베드로가 입국심사를 하면서 『두사람 모두 합격』했다. 그런데 미국인에겐 아파트 한채뿐인데 일본인에겐 대저택과 자가용 3대,그리고 풀이 지급되었다.
미국인이 항의하자 베드로왈 『답답한 사람. 당신네 미국인은 천국에 넘치지만 일본 친구들은 좀처럼 볼 수 없다네.』
이같은 유머는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마저 『누가 전쟁의 책임이 있는지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수십년 또는 수백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는 그런 둔감과 오만 때문에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둔감한 도덕성과 오만한 건망증을 미워하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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