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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긍정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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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0여 년 전 채 선생은 덴마크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당시 부산 복음병원장이었던 장기려 박사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다. 그 덕분에 없는 사람들도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의료보험조합 일과 더불어 각종 봉사활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당시 서른 한 살의 채 선생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탄 차가 그만 산비탈에서 언덕 아래로 굴렀다. 차는 풍뎅이처럼 뒤집어졌고 공교롭게도 어느 고아원을 칠해 주려고 차 안에 실어 놓았던 페인트와 시너 두 통이 쏟아지면서 채 선생의 몸을 적셨다. 차는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그 불길이 시너를 뒤집어 쓴 채 선생을 덮쳤다. 정말이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채 선생은 거의 몸 전체가 타들어가는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 후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30여 차례나 성형수술을 해야 했다. 결국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귀를 잃고 한 눈은 멀고 손은 갈고리처럼 됐다. 물론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채 선생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며 보살피던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참으로 모진 운명이었다. 채 선생은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을 만큼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세월이었다. 한마디로 깊은 수렁이었다. 하지만 채 선생은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깊은 수렁 속에서 깊은 긍정의 힘에 의지해 끝내 죽음의 미몽을 떨치고 일어섰다.

훗날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하나는 'Forget(잊어버려라)'이고 다른 하나는 'Forgive(용서해라)'야! 사고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으면 난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고 비워내야 그 자리에 또 새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 누구 잘못 탓할 것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 거야."

결국 채 선생은 그 깊은 수렁을 깊은 긍정의 힘에 의지해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일을 시작했고 1975년에는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86년에는 경기도 가평에 자기 돈을 몽땅 털어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웠다. 콘크리트 벽에 갇혀 꼼짝없이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흙을 만지고 별을 세면서 자라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채 선생은 이 세상과 하직할 때까지 두밀리 자연학교의 교장이었다.

생전에 채 선생은 '이미 타버린' 몸을 이끌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강연을 했다. 하지만 입의 말보다 전신화상을 입고 죽다 살아난 몸의 말이 던지는 울림이 더 컸다. 그는 '이미 타버린' 그 몸에서 뿜어나오는 진한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수렁을 헤쳐 나올 깊은 긍정의 힘을 확인시켰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의 생명력이 움터올 수 있는 것도 실은 깊은 긍정의 힘이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오는 것이기보다 긍정하는 사람들 마음에 먼저 온다. 온통 부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불평과 불만이 넘치는 사람에겐 새순 돋고 꽃피는 봄이 와도 결코 봄이 아니다. 그러니 봄은 단지 계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부터 온다. 부정하는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이지만, 긍정하는 마음은 이미 봄이다. 결국 깊은 긍정 속에 새봄도 온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