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협박범의 「범죄불감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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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3천달러가 입금되면 회사를 찾아가 떳떳하게 빚도 갚고 남은 돈으로 사업자금도 마련하고 싶었어요.』
28일 오후 서울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
전직장인 S자동차부품회사 사장 김모씨(36·서울 신길6동)집에 돈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납치하겠다고 협박하다 공갈미수혐의로 구속된 장현진씨(32·무직·인천시 박촌동)가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큰 소리치고 있었다.
『올 1월부터 8개월동안 이회사 영업사원으로 있으면서 대리점에 납품한 대금 1백29만원을 쓰게 됐어요.』
장씨는 빚 1백28만원 때문에 저지른 치밀한 범행일지를 엮어갔다.
장씨가 김씨의 딸 유괴협박에 착수한 것은 11월20일.
이날 오후 8시쯤 2호선 교대역 공중전화부스에서 유모씨(28)의 산업안전관리사 자격증을 주은 장씨는 유괴협박에 필수적인 「가명」의 힌트를 얻었다.
다음날 오전 부천역 지하상가에서 「윤유헌」이라는 도장을 새긴 장씨는 곧바로 구로6동 J은행에 예금계좌를 개설한뒤 다시 을지로입구역으로 장소를 옮겨 김씨집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내일아침 11시까지 미화3천달러를 J은행에 입금시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두딸을 모두 납치해 버리겠어.』
『우리는 잘못한게 없어요. 누구신데 이러시는 거예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통에 매달리는 김씨부인(34)에게 막무가내로 최후통첩을 한 장씨는 다음날 입금이 안된 것을 확인하고 일단 「관망자세」로 선회했다.
그러나 은행의 폐쇄회로 TV에 의해 장씨의 「꼬리」는 포착됐고 26일 오후 10시 집으로 돌아오다 잠복중인 경찰에 붙잡혀 장씨의 한탕주의는 6일만에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난 유괴범이 아닙니다. 단지 빚을 갚기위해 납치하겠다고 협박한 것뿐이에요. 그것도 죄가 됩니까.』
미수에 그쳐 「죄가 안된다」는 장씨의 거침없는 강변.
범죄불감증·한탕주의의 중병을 앓고있는 우리사회의 한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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