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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의 중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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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13 합의'를 이끌어 낸 동력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싶다.

첫째, 국제사회의 협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양자 접촉을 자주 했으나 이는 6자회담의 틀에서 움직인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도 전례 없이 힐 차관보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덕분에 베를린에서 두 사람은 좋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대북 중유 제공과 미.북 관계 정상화 추진이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바꿨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덕분에 양자 접촉은 성공했고,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어 낼 수 있었다.

동시에 '2.13 합의'를 이룬 배경에는 6자회담의 나머지 당사국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중국은 북한에 계속 압력을 행사했으며 유엔의 대북 제재도 지지했다.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을 동결하는 데도 중국이 협력했다. 부시 행정부가 2003년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포기하고 6자회담을 선택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북핵 문제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라고 애써 외면하던 때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또 핵 포기 대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평양을 설득했다. 바로 이것이 북한의 핵시설 폐기 혹은 불능화를 이끌어 낸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한국도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움직였다. 북한과 인도적 차원의 대화도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연대감과 결속이 이번 합의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둘째, 북한이 이전 회담과 달리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수로에 대한 집착도 버렸으며 BDA 자금도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돌려줘도 된다며 자세를 낮췄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감행한 마당에 전략적으로 이런 입장을 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한발 물러섰다는 게 더 정확한 해석이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가 현실로 다가오자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두려워했다. 만약 북한이 전략적으로 자세를 낮췄다면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더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2.13 합의'가 뭐 대단한 것이냐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6자회담의 대표로 참석한 외교관들의 노력만은 인정해 줘야 한다. 이번 합의가 북핵 문제에 있어 앞으로도 매우 유용한 해법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선 국제사회가 더욱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한 비율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다시금 상기시켜 줬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정리=강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