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1부] 여름 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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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엄마가 고3 때였던가. 엄마의 집이 차압을 당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일이 일어났었나 보았다. 빨간 딱지가 더덕더덕 붙은 집에서 외할머니는 매일 밤 울었는데 엄마는 외할머니가 더 슬퍼할까봐 슬픈 기색도 보일 수가 없어서 매일 하나씩 즐거운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뻐하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그때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형제들을 모두 모아놓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준 다음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우리 집이 이 지경이 안 되었으면 우리가 언제 저녁마다 모여 서로를 이토록 걱정해보았겠니? 너희가 요즘은 늦게 들어오지도 않고 나도 술 좀 덜 마시고 서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 아빠가 미안하기는 하지만 행복하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야. 집이 우리 가족인 것은 아니야."

엄마는 내게 그 말을 들려주면서 "본인이 보증을 서지만 않았다면 감동적인 말이긴 했겠지만 어쨌든 대단했어. 외할아버지가 엄마보다 강적이지?" 하고 말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외가의 가훈은 "아마 어떻게 잘 되겠지"일 것이다. 아니 "무조건 잘 될 것이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쨌든 외가 식구들은 다 '잘 되었다'. 외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아프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미리 걱정하면 무슨 소용 있겠어. 닥치면 걱정해도 늦지 않아. 곰곰 생각해보고 바꿀 수 있는 일이면 열심히 준비해야지만 그게 안 되는 일이면 얼른 단념하고 재밌게 지내는 거야"라고 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엄마와 티셔츠도 꼼꼼하게 다려 입는 집에서 자란 아빠는 대체 서로의 무엇이 좋았던 걸까, 나는 그 이후로도 의아해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쳐도,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남자친구에게 엄마 집을 먼저 데려와야 할지 아빠 집으로 먼저 데려가야 할지도 내게는 남모를 고민이었다. 어떤 집을 먼저 가든 두 번째 집에서 그는 좀 큰 충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어? 하고 말이다.

남동생들은 내 물건에 더 이상 흥미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막내 제제는 내 가방에서 총이나 칼 하다못해 초콜릿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자 슬슬 싫증이 나는 것 같았다. 제제는 납작하고 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물건에 손대는 것은 질색이었는데 나는 저 아이를 혼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좀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제제는 너무 귀찮았다. 내가 어떻게든 공부를 해보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면 난데없이 내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와서 "누나, 다음 중에 제일 좋은 걸 골라봐. 일, 커다란 바윗덩어리. 이, 날카로운 창. 삼, 시퍼런 칼날. 사, 도끼"라고 마치 내가 모르는 어떤 세계를 가르쳐주려는 듯한 약간은 거만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곤 했다. 처음에는 그 진지하고 거만한 표정이 귀엽기도 해서 "그게 뭔데?"하고 대꾸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제제는 마치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짐짓 어깨를 펴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곤 했다.

"응, 이건 말이지, 내 게임에 나오는 무기들이야." 그러고는 나보고 적을 물리칠 한 가지 무기를 골라보라고 옷을 잡아당기며 졸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때도 아마 내가 그래도 시험인데 공부를 좀 해야지, 결심을 막 하려고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틀림없이 그런 순간이어야만 한다.) "누나 내 카페에 가입해. 내 카페의 이름은 아기자기 이야기 카페야"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린 것이 카페를 운영한다는 게 기특하기도 해서 "그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는데"라고 묻기도 했었다. 그러면 제제는 약간 고개를 외로 꼬면서 슬픈 목소리로 "실은 엄마 한 사람뿐이야."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청춘의 고뇌가 여드름처럼 덮치고 나를 배반한 지난 남자친구의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내가 엄마의 집으로 와서 제일 먼저 마주친 현실이 돌이나 창이나 칼, 도끼 중의 하나를 억지로 골라야 한다는 것이니 기가 막혔고 '아기자기 이야기 카페'에 들어가 아홉 살짜리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황당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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