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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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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업자득이다.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을 되짚어 보면 의문이 풀린다. 17대 국회 출범부터 지금까지 3년을 끌어 오고 있는 사학법 개정은 열린우리당이 주도했다. 탄핵 역풍으로 만들어진 여대야소 상황에 힘입어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고, 사학법은 그중 하나였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사학법을 단독처리했다. 타협 없이 힘으로 밀어붙여진 사학법은 이후 사사건건 국회의 발목을 잡았다. 2006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사학들은 새로 도입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당국도 이를 규제하지 못한다. 있으나마나 한 법이 된 것이다.

헛힘을 쓴 대가는 컸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을 다른 많은 민생.현안법안들과 연계하고 있다. 임시국회가 부지기수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지만 진전은 없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사학법 덫에 걸려 주택법.사법개혁법안 등 주요 법안의 처리가 또 좌절됐다. 국민은 사학에 개방형 이사를 의무화할 것인가, 또 누가 추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게 개정 논란의 골자다)가 왜 그토록 심각하고 오래 끌어야 하는 사안인지, 당장 자신이 먹고사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민생이 걸린 법안들이 볼모 잡히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3년 전 17대 국회가 출범했을 때 국민은 갈채를 보냈다. 유권자들은 무려 75%의 의원들을 물갈이했다. 35~40% 수준이던 이전 교체율의 배에 가깝다. 그만큼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강했다. 과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국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시작부터 상대를 공격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차떼기당' '부패정당'으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했다.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라는 인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굴복시키고 말살해야 하는 적으로 간주했다. 그 바탕엔 '나는 선(善), 너는 악(惡)'이란 독선과 자신의 지지세력에만 박수받으면 그만이라는 아마추어리즘이 깔려 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최소한의 품격마저 잃어 버린 채 자신의 이익만을 관철하려 아귀다툼을 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때려눕힐까 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모습에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염증과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이제 그것은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의원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정치에서 완승이나 완패는 없다. 축구경기에서 10대 0이나 20대 0의 일방적인 스코어가 나오면 그것을 보는 관중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도 그렇다.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존재 의미와 가치를 잃는다.

내년 4월이면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를 포기한 경우가 아니라면 17대 국회 성적표를 들고 다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박수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임에 흥미를 잃은 관중이 다른 경기나 선수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중엔 "18대 국회 물갈이 비율이 17대 기록을 경신하고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내년의 '평가전'에 나설 생각이 있는 의원들이라면 지금쯤 '정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