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땅에 떨어진 변호사들의 윤리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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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납치 사건을 공모하고 범행을 배후 조종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변호사는 범행을 위해 체포영장까지 위조했으며 공범들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하고 잡혀도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지시하는 등 법조인으로 터득한 법률.수사 지식을 고스란히 범죄에 악용하는 파렴치함을 보였다. 법을 수호할 신성한 의무를 자임한 변호사가 조직 폭력배들에게나 어울리는 '막가파'식 범죄를 저지른 데 충격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땅에 떨어진 변호사들의 윤리 의식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변호사들의 비리는 실로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과거 '전관예우'나 '과다 수임료' '불성실 변론' 등 도덕적 문제가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에는 변호사들이 범죄를 저질러 사법처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석 달 새 5명의 변호사가 사기.횡령 등 범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기소됐다. 아파트 철거 공사를 하청받으려던 고객 돈 1억원을 원청회사와 짜고 가로챈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정부자산 매각 의뢰 전문 변호사라고 속여 토지 매입금 380억원을 빼돌린 변호사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변호사 수 급증으로 자질과 소명 의식이 부족한 변호사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후년이면 전국 변호사 수가 1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법률시장의 경쟁 과열로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한다'는 인식이 더 이상 확산되기 전에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정 구호만으론 안 된다. 비리에 대해 기존의 솜방망이를 버리고 강력한 징계의 몽둥이를 휘둘러야 한다. 한 언론 조사에 따르면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 중 40% 이상이 사건 수임 건수가 늘거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래선 곤란하다. 징계를 받으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변호사 비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변호사들은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징계자 전원의 실명 공개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픔이 있어도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야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